우연히 보험사의 광고를 보다가 떠오른 생각
'다이렉트 000보험'
보험사는 아직 옴니채널이 아닌 멀티채널 형태로 운영된다. 전통적인 설계사 채널과 전화로 상담하는 TM채널, 그리고 온라인으로 고객이 직접 가입하는 다이렉트 채널. 크게 보면 이 3개 형태의 채널이 조금씩 다른 상품과 가격구조를 가지고 있다.
타산업에서 옴니채널을 구현하여 온라인에서 검색한 상품을 오프라인에서 구매하거나 오프라인 매장에서 본 상품을 온라인으로 주문하여 배송받을 수 있다.
그러나 보험은 채널간 융합이 안된 멀티채널 형태라 아직은 채널별로 상품과 가격이 조금씩 다르다. .
예전에는 설계사를 직접 만나서 가입했던게 일반적이었고 이후 만나지 않고 전화상담으로 하는 TM영업이 생기면서 대면 설계사와의 차별화를 강조하기 위해 다이렉트란 표현을 사용했다. 그러다 온라인으로 가입하는 방식도 생겨나면서 다이렉트는 TM과 온라인을 모두 아우르는 보험 가입 방식이 되었다.
그러다 온라인을 통한 가입이 확산되면서 다이렉트는 어느순간 온라인으로 고객이 직접 가입하는 방식이라는 개념이 지배적으로 자리잡았다.
특히 온라인 가입이 가장 먼저 활성화된 영역은 자동차보험이었다. 의무보험이라 설계사의 니즈환기나 설득과정이 필요없었고, 상품도 어느정도 표준화되어 고객이 혼자서 가입하기에 상대적으로 어렵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다이렉트 자동차보험의 가장 큰 차별점은 가격이었다. 설계사를 통해 가입하게 되면 회사는 설계사들에게 영업의 대가로 수수료를 지급하게 되는데, 온라인은 채널 자체를 회사가 운영하는 형태라서 수수료 지급이 필요없다. 초기에 인프라를 구축하면 이후로는 운영, 개선 비용만 들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온라인을 통해 가입하면 설계사를 통해 가입하는 것보다 상품에 따라서는 10~20% 정도 저렴하고 온라인 채널 담당자는 당연히 그걸 강조하고 싶어한다. 반면, 저렴한 가격으로 인해 정작 보험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보상단계에서는 불이익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고객의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보상은 동일하다는 것을 전달하고 싶다. 그래서 모 회사는 다이렉트 자동차보험의 광고 카피를 '가격은 다이렉트 보상은 0000(회사명)' 을 사용했다. 가격은 저렴하지만 보상은 동일하다는 의미를 전달하려는 의도이다. (실제로 일부 회사는 다이렉트 채널 상품의 보상은 외주업체에 맞기는 경우도 있다.)
나도 업계내에서 일하다보니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설명을 듣고 나서는 그냥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다 어느날 아침에 스치듯 보험사의 TV광고를 보다가 의문이 들었다.
'다이렉트'란 표현을 고객들은 이해할까? '가격은 다이렉트 보상은 0000' 라는 의미를 가격은 다른 채널로 가입하는 것보다 저렴하지만 보상은 다른 채널과 동일하다는 의미가 제대로 전달이 될까?
동시에 얼마전 책에서 본 '고착개념'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브랜드로 남는다는 것' 홍성태 교수 저)
기존의 관점에서 벗어나지 못한채 고착화 되어 있는 개념.
이 광고 카피가 보험산업의 고착개념을 보여준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보험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다이렉트란 표현을 '설계사를 직접 만나지 않고 가입하는' 방식이라는 것에 익숙하다. 그런데 타산업에서는 그런 방식을 지칭하는 용어는 온라인/인터넷/모바일이라는 용어로 사용한다. 온라인몰, 인터넷몰, 모바일몰 처럼.
보상은 동일하다는 메세지는 어떠한가. 설령 메세지 자체를 온전히 이해했다고 하더라도, 고객입장에서는 너무 당연한 얘기일 수 있다. 우리가 온라인으로 주식거래를 했다고 상담문의를 별도의 채널로 받지는 않는다. 온라인 쇼핑몰에서 물건을 구매했다고 CS가 오프라인 매장에서 구매한 것과 차이가 있지는 않다.
물론 초창기에는 그게 혁신적으로 받아들여졌을 수도 있으나, 이제는 그렇지 않다. 보험을 제외하고는 옴니채널이 일반화되어 있는데, 우리의 사고는 십년전의 상황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보험이라는 산업을 넘어서, 한발짝 떨어져서 바라보니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용어가, 카피가 참으로 어색하게 느껴졌다.나도 익숙함과 관성의 덫에 빠졌던 것이다.
그 순간 이것 외에도 고착개념에 빠져있는게 많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뒷골이 서늘해졌다.
마케팅을 하면서 회사사람들에게는 늘 out of box thinking 이 필요하다, 고객관점으로 생각하는게 필요하다고 입버릇처럼 말해왔는데, 정작 내가 그렇지 못했구나에 대한 부끄러움.
깨달음의 순간은 예고없이 찾아온다.
이를 통해 업무를 하면서 우리가 전달하고자 하는 브랜드 메세지, 상품의 USP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내부자의 시선으로 생각하지 말고 업의 바운더리를 벗어나 외부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
그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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