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설득하는데는 팩트보다 스토리가 유리하다는 글을 본적이 있다.
팩트는 이성을 스토리는 감성을 자극하고, 사람은 이성보다는 감성에 더 잘 설득된다는 얘기였던 걸로 기억한다.
마케팅, 브랜딩 뿐 아니라 스타트업의 투자에도 스토리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건 익히 많이 들었던 얘기다.
그러나 스토리, 스토리텔링의 중요성에는 공감하지만 그게 팩트보다도 더 큰 영향을 미칠까에는 솔직히 좀 의심했었던 것 같다.
그런데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을 통해 나는 아니 우리는 스토리의 힘을 너무 잘 경험하고 있다.
파트1이 나온 후 2달 만에 파트2가 나왔고, 어떤 사람들은 연차까지 내면서 공개되기만을 기다렸다고 한다.
지난 주말 만났던 사람들의 첫 대화는 대부분 '더 글로리 봤어'로 시작했고, 밤새 달린 후유증으로 피곤함에 절어 있었다.
그러면서도 엄청난 흡입력과 완벽한 떡밥회수, 만족스러운 결말로 인해 행복해했다.
나 역시 찜찜함이 남지 않으면서도 통쾌한 결말에 그리고 모든 출연진의 구명없는 완벽한 연기에 무엇보다 오글거리는 로맨스 대사만 잘 쓸 줄 알았던 김은숙 작가의 찰진 대사에 매료되어 며칠간을 흥분상태로 보낸던 것 같다.
나뿐 아니라 '더 글로리'는 뉴스에서만 짧게 보고 잊혀졌던 학폭 이슈를 수면위로 완전히 끌어 올렸다.
때마침 불거진 정순신 아들의 학폭과 그에 대한 부모의 대응은 일반인들의 학폭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 학폭 가해자에 대한 분노를 불러 일으켰다. 비단 우리나라 뿐 아니라 태국에서는 '더 글로리'의 영향으로 예전 미투처럼 학폭을 당한 사실을 'The Glory Thai' 해시태그와 함께 SNS에 올리면서 일부 유명인들의 사과를 받아내고 있다고 한다.
그동안 학폭에 관한 뉴스들은 많았다. 그러나 1분 내외의 짧은 뉴스는 그저 내가 아닌 누군가의 일처럼 느껴졌고 깊이 공감하고 아파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러나 드라마를 통해 학폭 피해자에 완벽하게 감정이입이 되면서 가해자의 가벼운 일탈처럼 시작된 학폭이 피해자에게는 생을 포기할만큼의 고통으로 다가온다는 것을 절절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어느때보다 진지하게 그리고 적극적으로 학폭 가해자에 대한 엄중한 처벌을 요구하고 있다.
스토리가 팩트를, 뉴스를 완벽하게 이긴 케이스다.
김은숙 작가가 '미스터 선샤인'을 통해 역사에 이름도 남지 않은 수많은 의병을 재조명한 것처럼 이번 '더 글로리'는 지금도 어딘가에서 학교 폭력을 당하면서 어디에도 말하지 못하고...심지어는 자신탓이라고 잘못 생각하며 힘들어할 많은 피해자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그리고 가해자들에게는 응당한 처벌이 법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가해지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김은숙 작가를 포함한 스토리텔러들이 우리가 놓치고 있는 사회적 이슈를 찾아내 시청자 모두가 뜨겁게 공감할 수 있는 콘텐츠로 만들어주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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