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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알아보는 시간 ; '밑미홈'의 '심심한 옥상'에서

일요일 아침, 오전 일정이 취소되 여유있게 아침을 챙겨먹고 소파에 앉으니 졸음이 온다.

이러다 자칫 종일 늘어져 쇼파와 침대와 한몸이 되어 하루를 날려버릴 것 같은 불안함에 어디라도 나가야겠다 생각하다 서울숲이 떠올랐다.

개인적으로 나무가 많은 곳을 좋아하기에 종종 친구를 만날때 약속장소를 성수로 잡아서 식사를 하고 서울숲을 산책하곤 했다.

 

성수가 몇년전부터 젊은이들 사이에 핫플레이스로 자라잡다 보니 11시쯤인데도 서울숲은 사람들도 가득했다.

돗자리나 테이블에 앉아 음식을 먹거나 휴식을 취하는 가족단위 또는 친구들이 많이 보였고 반려동물을 산책시키거나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가족들도 많았다. 느린 걸음으로 1시간 정도 서울숲을 산책하다보니 나무 그늘에서 잠시 쉬고 싶은데 이미 빈 자리가 거의 없었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곳이 밑미홈.

지난 5월 오픈 후 한번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친구와 함께 간 탓에 3층에 위치한 '시간을 파는 상점'을 짧게 둘러보고 2층 '위로하는 부엌 (금자씨 부엌)'에서 식사만 하고 돌아왔었다.

시간을 파는 상점에서 1시간 또는 2시간 짜리 쿠폰을 사면, 옥상에서 나만을 위한 시간을 가질 수 있는데 이걸 꼭 경혐해보고 싶었다.

(밑미홈에 관한 첫 방문기는 링크 참조하세요   https://odotpedia.tistory.com/123 )

 

마침 혼자왔고 조용히 쉬고 싶었던 터라 근처 밑미홈을 방문했다. 일요일 낮의 시간을 파는 상점은 한산했다.

점원 혼자 가게를 지키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서울숲과 성수동 골목길을 가득 채운 사람들과 대비되어 어딘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마치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마법의 입구같은.

7000천원을 지불하니 1시간짜리 이용권과 나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질문지와 동화책 1권을 주었다. (동화책은 이벤트로 한정기간 제공). 이 1시간 이용권은 5층에 위치한 심심한 옥상을 갈 수 있는 티켓이다.

심심한 옥상 역시 아무도 없었다.

그로 인해 그 공간을 오롯이 나 혼자 이용할 수 있는 호사를 누릴 수 있었다. 차와 커피를 무료로 셀프로 이용할 수 있었고 이벤트 기간이라 시원한 호가든 캔맥주도 무료로 제공되었다. 냉장고에는 얼음과 물도 준비되어 있어 취향대로 차와 커피, 또는 맥주를 즐길 수 있었다.

실내공간에는 캠핑 의자와 테이블 3 set가, 오픈된 공간에

는 2개의 큰 파라솔 아래 마찬가지로 캠핑 의자와 테이블이 각각 1 set씩 준비되어 있었다.

날씨가 더운 탓에 에어컨이 나오는 실내에 옥상쪽을 향해 자리잡았다.

붐비는 성수 거리와 달리 옥상의 풍경은 아주 고요했다.

꽤 더운 날씨였지만 간간히 불어오는 바람은 쾌적했다. 덥다 싶을 때마다 바람이 불어 이마에 맺히려는 땀을 날려주었다.

천천히 동화책을 읽고 난 후 냉장고에서 맥주와 얼음을 꺼내 컵에 가득 채우고 벌컥벌컥 마시니 한결 시원해졌다.

탁트인 옥상 풍경, 싱그러운 바람, 차가운 맥주 그리고 책과 메모지.. 별거 아닌데 행복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그래 행복이 뭐 별건가, 이런게 행복이지...'

기분좋게 남은 맥주를 마시며 나에게 하는 질문 카드 4개를 읽어보는데 제대로 대답할 수 있는게 하나도 없어서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속상한 마음에 질문지를 내려놓고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았다.

끝에만 삐쭉 보이는 나무에서 나뭇잎들이 바람에 날려 이리저리 흔들렸다. 초록은 참 생기있다. 그 색만으로도 생명력이 느껴진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을 보고있자니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중간 중간 고개가 꺾이며 잠에서 깨기도 했으나 그 자체가 행복해서 눈을 뜨지 않았다.  그러다 10분쯤 후에 다른 손님이 오면서 눈을 떴다.

그 손님도 나처럼 공간을 이리저리 둘러보고 커피를 내려 적당한 자리를 골라 앉았다.

이미 구매한 1시간이 다가오고 있기에 그 손님도 오롯이 혼자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심심한 옥상에서 내려왔다.

 

혼자 사는 나로서는 집에서도 충분히 이런 시간을 가질 수 있음에도 나는 왜 그 공간에서의 시간이 좋았을까?

그곳에서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면서 집 이외에 이렇게 나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파트가 아닌 탁 트인 옥상이나 정원이 있는 곳.

휴대폰도 집안일도 TV도 없는 곳에서 온전히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공간,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또 아무 고민도 하지 않아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시간 자체를 보낼 수 있는 곳.

아직 밑미홈의 심심한 옥상이 그걸 대신할 수 있다고 말할 순 없지만 조만간 한번 더 방문하고 싶은 생각은 들었다.

 

다음번엔 질문지에 대한 대답도 찾을 수 있기를...

 

 

이 문을 열면 심심한 옥상이 열린다
입구에서 바라본 전경
캠핑의자에서 바라보는 오픈 옥상
1시간 이용권과 함께 받은 질문지와 동화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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