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달 독서모임 책으로 지난해말부터 읽어야지 마음먹었던 책이 선정되어 평소와 다르게 일찍 책을 읽었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롱블랙을 통해 책을 접하고 호기심이 생겼는데, 이동진평론가가 좋은 리뷰를 했다는걸 듣고 더 궁금했다.
그리고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논픽션이라고 봐야될지, 자전적 소설이라고 봐야될지 모르겠지만 (둘다 해당되는것 같다), 그 점이 이 책을 더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든 포인트이다. 있을 법한 상황을 상상해서 글을 쓰는 것도 어렵지만 이런 소재를 찾아내서 흥미진진하게 엮어내고 그를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까지 완벽하게 녹여내는건 - 그것도 재밌고 쉽게 - 보잘것 없는 블로그 포스팅을 하면서도 낑낑대는 나를 비추어 봤을 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라는 제목의 의미는 '물고기'라는 것이 분류학 관점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바다에 살고 모양이 대충 비슷하다는 이유로 물고기라는 범주로 그들을 묶어서 이해하려고 하지만, 실상 그들 간에는 매우 다른 종류가 있고 그들 중 일부는 오히려 인간이나 다른 동물과 더 유사한 점이 많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를 통해 우리가 직관에 의지해 단순히 명명한 무엇 또는 인식이 사실은 아주 비과학적이라는 얘기를 한다. 즉, 편견에 대한 이야기다.
지금은 너무도 당연하게 여겨지는 남녀간, 인종간 평등이 과거 어느 시기에는 남성, 백인이 우월한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다.
이들이 평등하게 인식되는 것은 (물론 여전히 아주 평등한 관계라고는 보기 어렵다.) 그들의 지난한 투쟁과 희생의 결과이기도 하다.
이런 편견은 오늘날에도 계속된다. 동성애자, 장애인(지적, 신체적), 소득, 학력...등등.
생각해보면 우리가 분류를 하고, 복잡한 것들에 질서를 부여하려고 하는 것은 우리 뇌의 에너지를 아끼기 위함이다. 그런데 편리함에 정작중요한 것을 놓쳐버린 것이다.
어떤 사물을, 사람을 정확하게 알고 평가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오랜기간 살펴보고 사용해보고/만나보는 등 알아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런 과정을 스킵하고 빨리 알고 싶은 욕심에 프레임을 씌우는 것이다.
정확하게 얘기할 순 없지만 이런 프레임이, 질서가 좋은 경험을 할 기회를 앗아간 경우가 꽤 있을 것이다.
책에서 주인공은 자신이 살아갈 이유를 찾기 위해 집요하게 '데이비스 스타 조던' 이라는 과학자이자 교수이자...작가의 삶을 추적하다가 그의 어두운 이면들을 알게되고 끝내는 통쾌하게 그가 인생을 통틀어 이룩했던 것이 결국은 틀린 것이라는 것을 밝혀냈다.
사실 이는 매우 안타까워해야할 일이다. 그런데, 그가 자신의 생각을 공고히하기 위해 얼마나 고집스럽게 그리고 무자비했는지 알게 되니 결국 그의 일평생의 연구가 사실과 다르다는 것이 드라마같은 결론같다고 느껴진다.
책장을 덮으며 조던처럼 내가 쫒고 있는 물고기는 무엇일까 생각해보게 되었다.
나도 명확한걸 좋아하는 성격이라서 업무를 할 때나 개인적인 일에도 항상 질서를 부여하는 편이다. 분류하고 체계를 잡고, 어려 사건들간의 관계를 한눈에 쉽게 보이도록 정리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예상치 않은 이벤트에서 발견의 기쁨을 느끼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평소와 다른 루틴에서 의외의 발견을 하고 그 과정에서 행복해한다.
그래서 앞으로는 이런 물고기들을 하나하나 없애보려고 한다.
내가 씌워놓은 프레임을 벗기고 있는 그대로 사물을, 사건을, 사람을 바라보려고 노력하는 것.
그게 이 세상을 살아가는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