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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쁨속에 놓친 것 ; 헤르만 헤세의 '죽은 나무를 위한 애도'를 읽고

요즘 진화와 미래학, 사회변화와 같은 거대 담론이 주제인 책들을 읽다가 오랜만에 문학작품을 읽으니 초반엔 좀 어색한 느낌이 들었다.

책의 두께가 매우 얇아서 금방 읽겠다 싶었는데, 의외로 눈과 머리가 따로 놀아 활자를 머리에 담는데 애를 먹었다.

스토리나 메세지 중심의 책에서 단어 하나하나를 음미하고 이해해야 의미가 있는 문학작품을 너무 오랜만에 읽은 탓이다.

그만큼 감성이 죽었다는 의미도 될테고.

 

출처 : 교보문고

 

헤세는 자연을 특히 나무와 그에 딸린 꽃, 열매에 대해 생생하게 묘사를 하고 그를 감상하는 마음도 상세히 글로 표현한다.

그래서 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헤세의 눈을 빌어 그 모습이 그대로 그려질 정도로.

그러면서 자연처럼 순리대로 살아갈 것을, 지금 그대로의 모습을 즐기고 사랑하라는 메세지를 전한다.

책을 읽으며 깨달은 건, 의식하지도 못한채 시간에 쫓기며 살아가면서 오랫동안 자연을, 아니 자연이 아니라도 무언가를 찬찬히 관찰하고 음미할 시간을 갖지 않았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4,5월의 새로 나온 나뭇잎들을 보며, 어떻게 이런 예쁜 초록이 있을까 감탄하고, 바람에 살랑거리는 나뭇잎들을 오랫동안 바라보기만 했던 적도 있는데 요즘은 그런 기억이 거의 없다.

구독하는 콘텐츠도 쫓기듯 빨리 보고, 영상은  10분도 길어 중간중간 스킵하거나 1분 미만의 숏츠 중심으로 본다.

사실 거리의 나무나 혹은 새로운 건물이나 길을 지나가는 아이들을 바라보는데, 그러면서 떠오르는 감정을 살피는데는 5분도 충분할 수 있다.

그럼에도 그런 시간을 내지 못하는 나를 보며,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시간을 내지 못할 정도로 정말 내가 바쁜가? 그만큼 중요한 일을 하고 있나? 라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바쁘다는건 어쩌면 사실이 아니라 나의 인식일 수도 있다.

그래서 오늘부터라도 5분만이라도 무언가를 찬찬히 관찰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

이게 연습이 되면, 익숙해지도 그러다보면 다양한 감상과 더불어 영감이 떠오를 수 있다.

머릿속에 자꾸 무언가를 쑤셔넣는다고 아이디어가 솟아나는건 아니다.

어쩌면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가장 필요한건 채움보다 비움. 그리고 멈추는 시간인 것 같다.

아무 목적 없이 그저 무언가를 애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행위, 그런걸 너무 오랫동안 잊고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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