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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숙소로 떠난 여행 ; 전주 로텐바움에 다녀와서

어린시절 여행을 다닐때는 내가 가는 나라, 도시가 중요했지 숙소는 늘 우선순위에 밀렸다.

정해진 일정동안 가능한 많은 곳을 방문하고 보는 것이 목적이었기에 숙소에서 머물 시간도 짧았을 뿐더러 예산도 넉넉치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좀 여유가 생기고 나이가 들면서 여행 스타일도 바뀌었다.

새로운 것을 보고 경험하는 것도 좋지만 일상을 떠나는 것, 낯선 곳에서 머무르는 것에 대한 의미가 좀 더 커졌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이동은 줄고 숙소에서 머무는 시간이 길어졌다.

보통 일주일 이내의 여행이면 숙소를 한곳에 잡고 그동안만이라도 마치 내집 인것처럼 짐을 다 펼쳐놓고 지낸다.

 

코로나로 해외여행이 힘들어지고, 사람이 많은 곳으로의 여행도 부담스러워지면서 자연스레 나의 여행은 숙소가 중심이 되었다.

그냥 집을 떠나서 주말에 집이 아닌 다른곳에 머무는 것만으로도 숨을 트일 수 있었고, 약간의 설렘과 낯섬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내가 방문자처럼 느껴지고 어디든 크게 다르지 않은 호텔보다는 개성있는 부티끄나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숙소들을 찾게 되었다.

지난주 떠난 전주여행도 그렇게 진행됐다.

어느날 인스타그램을 보다가 로텐바움이라는 숙소를 알게되었다. 건축가 그룹이 전주에 오래된 이층집을 개조해서 만든 곳이었는데, 사진을 보고 반해버렸다. 친구에게 무작정 전주에 가자고 했고, 숙소 예약이 가능한 일정으로 여행을 잡았다.

전주에서 어디를 갈지, 무엇을 먹을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냥 그곳에 가고 싶다는 생각만.

[* 참고. 나중에 확인해보니 이 건축가 그룹은 27club 이라는 프로젝트팀으로 지역의 낙후된 건물을 리모델링해 동네를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기 위해 이런 작업을 한다고 함.  전주 이전에 부산 광안리 주변에 '웻에버 wetever'라는 숙소도 오픈했다고.

로텐바움의 경우 프랑스와 독일 국경을 접해있는 알사스-로렌 지방에 위치한 어느 젊은 사진작가의 집을 상상하며 인테리어를 했다고 한다.]

 

평범한 가정집으로 보이는 대문을 열고 들어가자 작은 정원이 보였다. 현관을 지나니 오래된 집이었음을 떠올리는 작은 거실이 있고, 양쪽에 주방겸 다이닝룸과 침실이 자리잡고 있었다. 이층으로 올라가니 마찬가지로 좁은 욕조가 있는 제법 큰 욕실을 사이에 두고 침실과 서재가 나란히 있었다. 서재에는 큰 책장과 책상 대신 티테이블과 누워있을 수 있는 다찌 같은 공간이 있었다. 

보통의 호텔 객실은 가장 중요한게 침대와 옷장인데, 이곳은 침대와 책장과 책상이 메인인듯 했다.

책장에는 책이 가득 꽂혀있고, 책상에도 마치 누군가 방금 책을 보거나 메모를 하다가 자리를 비운 듯하게 펜과 메모지 등 문구류가 놓여있었다.

집안 곳곳에 놓인 화분과 사진들도 마치 내가 사는 곳 같은 편안한 느낌을 들게 했다.

 

특히 주방에는 기본적인 주방용품 외에 큰 책장과 LP가 놓여있어 널찍한 식탁에서 햇살을 듬뿍 받으며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을 수 있다.

12시 체크아웃으로 일요일 아침에도 여유롭게 커피를 내리고 음악을 듣는 호사를 누릴 수 있었다.

공간의 구성과 인테리어 만으로도 여행객에게 마치 그곳에 계속 살고 있던 것 같은 편안함을 줄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가구며 소품 하나하나 신경써서 고른 것이 느껴졌다. 그렇지만 이질감이 느껴지게 너무 세련되지도 않고, 적절히 빈티지한 것들을 섞어놓아서 그냥 그 장소 자체에 녹아들어 있었다.

어릴적 친했던 친구집에 오랜만에 놀러간 따뜻한 느낌이 들었다. 

 

1박2일의 짧은 여행을 뒤돌아보면 내가 가장 좋았던 순간은 이제까지 먹어본 것 중 가장 맛있었던 비빔밥을 먹었던 순간도 아니고, 가보고 싶었던 숲속시집도서관을 갔을 때도 아니다. 숙소에서 음악 듣고 친구와 어린시절을 떠올리며 얘기하고 침대에 누워 넷플릭스를 보던 순간이었다. 마치 이곳에 사는 것처럼 특별할 것 없이 시간을 보냈다.

 

나는 전주가 아니라 로텐바움이라는 숙소로 여행을 갔던 것이다. 그리고 그곳은 내가 가장 좋았던 시절을 추억할 수 있게 해주었다.

 

집에 돌아와 짐을 풀기도 전에  '스테이폴리오'에서 다음 여행지를 검색하고 있었다.

숙소만 좋다면 그게 어디에 있든 중요하지 않다.  그곳은 나를 다양한 시간과 공간으로 여행시켜 줄테니.

 

※ 전주 로텐바음에 대한 간단한 정보

 - 위치 : 전주 교대와 초근접, 한옥마을과 근접 (다리만 건너면)

 - 비용 : 34만~40만 (VAT별도), 성수기 및 주말 여부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음

 - 구조 : 침실 2개, 욕실 2개 (1개는 욕조 설치), 나머지 방 하나에는 침대는 아니지만 누워서 책을 볼 수 있도록 타퍼가 깔려 있음

 - 예약은 아직 가오픈 기간이라 인스타그램에서 받고 있음

 - 방마다 큼직한 통창과 2개 이상의 창이 있어 햇살이 너무 잘 들어옵니다. 그러나 겨울에는 약간 추울 수도 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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