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업에 종사하면서 가장 답답했던 부분 중 하나가 시대를 따라가지 못하는 규제였다.
소비자 보호라는 근본 취지는 이해하지만 다양해지는 고객 접점이라든지 고객과의 소통방법, 판매방식 변화와 달리 예전의 비즈니스 모델에 맞춰 만들어진 규제를 바꾸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오늘 신문에 금융위가 보험설계사가 비대면으로 업무를 처리할 수 있게 한 규제 완화 방안을 올 상반기에 추진하기로 했다는 내용이 나왔다.
신종 코로나 19로 인해 비대면 금융서비스가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이유와 함께.
사실 코로나는 작년 2월 이후 지속되고 있고, 이미 영업현장에서는 대면 영업이 거의 불가능함에도 1년이 지난 후에야 검토를 해보겠다는 내용이나 얼마나 속도가 느린지 알만하다.
보험의 판매방식은 크게 4가지 형태로 구분되며, 판매방식에 따라 보험 판매에 따른 수수료가 달라진다. 이에 따라, 고객이 지불하는 보험료도 달라진다.
- 설계사를 통한 판매 (보험사 전속 설계사 또는 GA 설계사)
- TM을 통한 판매 (보험판매 자격을 가진 설계사가 전화를 통해 판매)
- 인터넷을 통한 판매 (고객이 인터넷 사이트에서 직접 개인정보를 입력하고 상품을 선택하여 가입)
- 방카 (은행에서 보험판매자격을 가진 직원을 통해 판매)
여전히 설계사를 통한 판매가 압도적인데, 이는 보험이 고객이 자발적으로 가입하는 경우보다는 설계사의 니즈환기나 설득을 통해서 가입시키는 경우가 많은 push 영업에 맞는 상품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고객이 복잡한 보험상품을 이해하기 어려우니, 설계사가 고객의 니즈와 지불여력 등 상황을 고려하여 적합한 상품을 권유한다.
최근엔 인슈어테크 중심으로 미니보험과 같은 단순한 상품을 판매하고는 있지만 아직은 전체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하다.
그런데 코로나 이후로 설계사들의 영업은 어려움에 처했다. 생필품처럼 당장 필요한 상품도 오프라인 매장에 가기를 꺼려서 노년층도 새롭게 온라인 쇼핑으로 이동하는 마당에, 당장 가입해야 할 필요가 적은 보험상품을 가입하겠다고 설계사를 만날 고객이 몇 명이나 있겠는가.
생필품 쇼핑처럼 그런 고객이 고스란히 인터넷으로 이동하지 않겠냐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앞서 말한대로 고객 혼자 인터넷을 통해 상품을 선택하고 가입하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어서 다른 산업만큼 온라인으로 수요가 이동하지는 않았다. (물론 인터넷 매출이 조금 증가하기는 했다)
그래서 기업들은 설계사들의 영업활동을 지원하고자 재빨리 비대면 tool을 만들어 제공하고 있지만, 계약 체결을 위해서는 한 번은 꼭 만나야 한다.
규제상으로 대면영업용 보험상품을 판매하는 설계사들은 최소 1번은 고객을 만나서 상품에 대해 설명해야하기 때문이다.
보험상품 가격에 컨설팅에 따른 대가로 설계사에게 지급하는 수수료가 반영되어 있기 때문인데, 맥락은 맞지만 컨설팅 시 직접 만나서 해야 한다는 방법은 지금 시대에 맞지 않는 것 같다.
게다가 전에 겪어보지 못한 코로나 팬데믹으로 모든 비즈니스 회의가 화상으로 이루어지고 기업들도 재택근무를 확대해가는 마당에 이 규제는 보험사들이 유연하게 대응해나가는데 큰 걸림돌이다
코로나 발생 후 1년이 넘어가면서 고객도 기업도 피로도가 높아지고 있다.
이제라도 비대면 업무처리가 가능하게 규제 완화를 검토한다고 하니 반가운 일이지만, '상반기 중' 이라는 다소 막연한 일정은 비즈니스 현장의 절박함과 괴리감을 느끼게 한다.
이뿐 아니라..미디어를 통한 판매방식이 홈쇼핑에서 모바일 라이브 쇼핑으로 이동하는 상황에서, 보험은 소비자보호라는 미명 하에 라이브 쇼핑이 막혀있다. 현재 규정상으로는 오직 홈쇼핑 채널을 통해서만 라이브 방송을 통해 보험을 판매하는 것이 허용되어 있고, 이 또한 판매자(쇼호스트)가 설명할 수 있는 대사의 대부분을 사전 심의를 받아야 한다.
그러니 고객과의 쌍방향 소통을 통해 판매하는 라이브 쇼핑에서는 보험을 판매할 수가 없다. 라이브 쇼핑 뿐 아니라 웬만한 새로운 판매채널은 허가를 받기가 어렵다.
보험사가 변화 대응에 느린 원인의 8할은 이렇듯 촘촘히 박혀있는 규제가 원인이다.
유리상자 안의 벼룩처럼 새로운 시도를 할때마다 규제에 막혔던 보험사들은 자연스럽게 혁신과 멀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제라도 정부차원에서 유리천장을 없애고 혁신을 장려해야만 보험업에 미래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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