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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씁쓸한 맛집의 기억

먹는거에 크게 관심을 갖는 편은 아니다. 사실 음식을 챙겨먹는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해서 SF소설에서 나오는 것처럼 모든 영양소들이 압축되어 들어있는 알약이 빨리 개발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그럼에도, 작정을 하고 먹을 때는 나름 까다롭다. 이때는 음식을 먹는 행위가 내 몸에 필요한 영양을 공급해주는 것이 아니라 황홀한 경험의 순간이다.

그렇기에 식당부터 메뉴선정에 이르기까지 매우 신중하다.

오랜만에 가족이 모였을 때, 친구를 만나 일상의 고단함을 풀어놓을 때, 위로나 축하가 필요한 직장 동료를 만날 때 떄로는 내몸을 좀 아껴줘야겠다고 생각이 들떄, 이럴 때 괜찮은 음식은 필수요소이다.

 

코로나로 인해 모임의 기회가 줄고 반면 몸도 마음도 피곤한 상황에서 제대로 챙겨먹을 기회가 많이 줄었다.

맛있는 음식, 새로운 식당을 찾는 즐거움을 놓치며 산지 오래되면서 음식이 주는 기쁨을 느낄 기회가 많지 않기에 나의 주 생활반경을 벗어나는 곳에서 볼일이 있을 떄면 주변에 괜찮은 식당을 검색해서 혼자라도 찾아가곤 한다.

 

오늘이 딱 그런날이었다.

작년말 바빠서 챙기지 못했던 회사의 건강검진을 12월 말에 간신히 예약하느라 몇개 검사는 못하게 되었다. 남은 검사를 두달이 지난 오늘에야 하게 되어 7시30분까지 병원에 가느라 일어나서 물한잔만 마시고 병원으로 향했다.

대기부터 검사까지 1시간여 남짓, 병원을 나오니 허기가 몰려왔다.

주변에 괜찮은 식당이 많은 곳이지만 이른 아침이라 대부분 문을 열지 않은 시각, 인터넷을 검색해 문을 연 식당을 찾으니 익숙한 이름이 떴다. 

'식객'이라는 만화에도 나온 유명한 곳이 아닌가. 

쌀쌀한 아침바람을 맞으며 10여분쯤 걸어서 식당에 도착했다.

홀은 꽤 넓었고, 토요일 아침 9시임에도 사람이 꽤 있었다.  여느 곰탕집과 달리 들어가면서 계산을 하는 시스템이었고, 자리에 앉고 외투를 벗자마자 곰탕 한그릇과 김치/깍두기를 테이블에 놓여졌다.

곰탕이라는 음식이 풍기는 정겨운 분위기와 달리 산업화 초기 분업 시스템으로 운영되는 곳 같았다.

입구에서 결제하면서 얘기한 주문은 큰 소리로 외쳐지면서 홀에 있는 직원에게, 그리고 주방에 있는 직원에게 전달되었고, 단일 메뉴의 장점을 살리듯, 주방에게 전달되자마자 그릇에 담겨진 곰탕과 김치가 홀 직원을 통해 배달되었다.

 

유명한 곳이라 조금만 있으면 홀이 사람들로 꽉 찰테니 이런 시스템이 아니면 운영이 쉽지 않겠거니 이해했다.

그런데 이런 마음은 곰탕이 테이블에 놓여지면서 코로 들어온 고기의 약한 누린내에, 그리고 첫 숫가락을 입에 넣었을 때 바사삭 부서져버렸다.

뽀얀 사골육수도 좋지만 나주곰탕과 같은 맑은 국물을 좋아하기 때문에 그곳의 맑은 국물을 보자 반가웠다.

그런데 국물을 한번 떠먹었을 때, '이게 뭐지' 싶었다.

지나치게 심심한 국물, 과장을 좀 보태자면 이건 고기 육수가 아니라 뜨거운 물에 고기를 넣었다 뺀 것 같은 맛이었다. 내것만 이상한건가 싶어 주위를 둘러보았다. 익숙하다는 듯이 열심히 먹고 있었다.

양이 적은 내가 일반곰탕을 시켜서 그런가 의심했다. 특곰탕을 시켰으면 달라졌을까? 그런데 보통 일반과 특의 차이는 양, 특히 고기의 양에 따라 차이가 나기 때문에 국물맛이 다를 것 같지는 않았다.

밥이랑 몇번 더 떠먹어봤다. 먹을 수록 고기맛 보다는 고명으로 많이 올려진 대파의 맛이 더 크게 느껴졌다. 솔직히 말해 육수를 과도하게 물로 희석한 맛이었다. 그 애매함 때문에 차라리 뜨거운 물에 말아먹는게 더 맛있겠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동네에 있는 그저그런 집이었다면, '아, 오늘 잘못 들어왔네, 다시 오지 말아야지' 그정도로 넘겨버렸겠지만 리뷰도 빵빵하고 나도 많이 들어본 곳에서 이런 음식을 만들었다는게 믿기지 않았다.

이후에는 맛은 포기하고 배고픔만 해소하겠다는 생각으로 숟가락을 빨리 놀렸다. 물에 말은 밥을 후루룩 넘기듯이 먹고 있는데, 5~6점의 고기가 보였다. 딱 봐도 질겨보이는 비주얼에 처음에 맡았던 누린내 때문에 망설여졌지만 1.5만원이라는 적지 않은 가격에 이 고기들의 지분이 50%는 되지 않을까 싶어 한점을 입에 넣었다.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누린내와 함께 질긴 식감. 모든 재료가 국산이고 고기도 한우라는 식당 소개가 마음에 들었는데, 이런 맛이라면 한우가 무슨 소용일까 싶었다.

결국 몇개 안되는 고기는 남길 수 밖에 없었다.

고개를 들어 홀을 둘러보았다. 여전히 직원들은 홀을 차지하고 있는 손님 수에 비해 과도하게 분주해보였고, 손님들은 열심히 음식을 입에 넣고 있었다. 내 기분이 투영된 탓인지 그들에게 먹는 즐거움은 별로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왜 이곳에 방문했을까? 나처럼 처음 오는 사람들일까? 음식을 먹으며 무슨 생각을 할까?  아니면 단골손님인가? 그렇다면 그들은 무엇때문에 단골이 된 것일까?

허영만 선생이 식객을 쓸 때 먹어본 곰탕도 이런 맛이었을까? 아니면 유명해진 후에 맛이 바뀐 것일까?

복잡한 감정을 남긴채 식당을 나왔다.

 

내몸에 좋은걸 주려고, 우연찮게 근처의 유명한 맛집을 발견한 기쁨을 한껏 누리려고 방문한 곳에서 이런 음식이라면 차라리 알약을 먹는게 백번 낫다는 씁쓸한 생각만 남겼다.

흔하진 않지만 가끔 이런 경험을 한다. 이름을 들어볼 정도로 유명한 곳이고 인터넷의 리뷰도 전반적으로 좋은데 막상 가보면 너무나 실망스러운 곳.  아무리 나의 입맛을 탓해보려해도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곳.

이런 곳은 대부분 갑작스러운 인기로 인해 운영에 집중하다보니 본질인 맛과 고객경험에 신경쓰지 못하는 경우이다.

오늘 방문했던 OO관은 맛도 수준이하였고, 고객경험 또한 엉망이었다. 

종업원들은 주어진 일을 수행하느라 분주했지만 그들에게 고객들은 보이지 않는 듯 했다.

빨리 주문한 음식을 전달하기 위해 테이블 사이를 큰 소리를 외치며 왔다갔다 할 뿐, 거기서 음식을 먹는 고객의 마음은 전혀 헤아리지 못했다.

 

글쎼, 내가 미식가도 아니고 그렇다고 외식을 많이 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오늘 방문한 소위 '유명한' 식당의 실망스러운 경험은 과연 그 식당이 얼마나 오래 유지될 수 있을까란 의문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나도 일을 하면서 바쁘다는 이유로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되었다. 

내가 하는 일이 얼마나 고객의 니즈에, 고격 경험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는지 항상 잊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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