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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11월 독서모임 ; 중국 희곡 '조씨고아'

처음 접한 중국 고전 (삼국지 제외), 조씨고아.

독서모임이 아니었으면 절대 읽지도 보지도 않았을 종류의 책이다.

예상과 달리 표지가 너무 산뜻한 핫핑크라 기분이 좋았다

일 때문에 경제경영, IT관련 책을 읽다가 머리식히기 위해서 가끔 읽는 희곡은 주로 작가들을 파는 경향이 있는데,

이상하게 중국문학에는 관심이 없었다.

트레바리는 내 관심사와 취향에 맞는 클럽을 선택하기에 평소 읽고 싶던 책을 읽게 되서 좋다면, 이런 독서모임 (와인 모임에서 만난 사람들끼리 결성한 모임으로 다양한 배경, 직업, 연령대의 사람들이 모인)에서는 의외의 책을 접하는 발견의 기쁨이 있다.

지난달의 프랑스 고전 '고리오 영감'도 마찬가지였다. 초반에 묘사가 너무 길어서 조금 지루할까 싶었는데 책의 내용이 2022년의 상황과도 맞닿는 부분이 있어 흥미로웠다.

 

조씨고아는 말 그대로 조씨성을 가진 고아라는 뜻이다.

진나라를 배경으로 한 희곡으로 중국 4대 비극중의 하나라고 한다. 책을 추천한 회원의 설명을 빌리자면 우리나라의 비극은 '한'을 담은 것들이 많다면 대륙의 정서가 들어간 중국은 주로 '복수'를 다룬다고 한다.

인구가 많아서 그런가 사람을 죽이는 스케일도 남다르다.

주요 내용은 왕의 신임을 받던 무관 도안고와 문관 조순이 정적관계에서 무관이 먼저 조순을 모략하여 공격하고 그의 일가 300명을 몰살되고 당시 임신 중이던 며느리가 낳은 아들이 20년 후 도안고에게 복수를 한다는 내용이다.

스토리도 단순하고 이야기도 큰 줄거리 위주로 정리되어 있어서 연극이나 영화, 드라마로 각색될 경우 중간중간에 굉장히 많은 에피소드가 추가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즉 각색을 누가 하느냐에 따라 전반적인 이야기의 톤이 달라질 수 있는 상상력을 자극하는 글이었다.

 

생략이 많이 되어 책의 내용만으로는 공감되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는데, 하나는 도대체 조순이란 사람이 얼마나 덕이 있는 사람인지 구체적으로 묘사되진 않았지만 여러 사람들이 그의 자손을 살리기 위해 아주 쉽게 (적어도 책 속에서는 망설임없이) 목숨을 버리는 것이었다.  심지어 정영이라는 자는 생후 1개월밖에 안된 자기 아들을 희생시키고 대신 조순의 손자를 20년간 아들로 키운다는 것이다.

나머지 하나는 20살이 되어 자신의 가족사에 대한 진실을 들은 조씨고아가 20년간 자신이 믿고 따르던 (심지어 두명의 아버지 중 한명이라고 부르던) 도안고를 가문의 복수라는 명분하에 무참히 고문하고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복수에 성공하는 것으로 책은 마무리되지만 나의 마음은 복잡했다.

복수 이후의 조씨고아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20년 동안 자신을 보살펴주어 또하나의 아버지라고 여기고 따르던 사람이 자신의 가문을 몰살시킨 원수라는 사실을 알고 분노와 두려움을 비롯한 여러 복잡한 감정이 휘몰아쳤을 것이다. 그렇기에 가문의 원한을 갚으라는 정영의 말을 듣고 도안고에게 복수를 했겠지만 과연 그걸 통해 그의 마음이 후련했을까?

혈육은 아니지만 도안고는 20년간 함께 살아왔고 그의 혈육들은 한번도 얼굴을 본적이 없다.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과연 피해자가 가해자가에 하는 직접적인 복수가 최선일까?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하는 책이었다.

그러려면 사회적인 시스템이 공정하게 작용해 가해자가 합당한 죗감을 치르게 해야 하는데, 그게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개인적인 복수가 타당성을 얻게 되는 것 같다.

그런데 복수는 또다른 복수를 낳게 되고 복수한 사람도 결코 행복하지만은 않을 것 같다.

 

살인같은 큰 범죄가 아니더라도 살아가면서 억울한 일을 종종 당하게 된다. 성격상 대놓고 항변하거나 따지지 못하기 때문에 속으로 앓는 경우가 많다. 정도가 큰 경우에는 가끔 속으로 저 사람도 똑같이 당하기를 바라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을 하는 시간조차 괴롭다. 자꾸 내가 본 피해가 상기되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에 대한 생각을 아예 안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의 에너지가 나쁜 방향으로 쓰이지 않게, 좋은 것들만 생각하는 것. 그리고 그들의 행동이 나의 일상을 침해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복수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그리고 복수에 성공한 조씨고아의 남은 인생이 궁금해지는 책이었다.

조씨고아와 함께한 와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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