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에 들어간 '영감'이라는 단어가 고전이라는 느낌이 물씬 풍긴다.
내가 평소에 안읽을 만한 책을 읽게되는 점이 독서모임의 장점이자...가끔은 단점인것 같다.
지난달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가 완전히 예상을 빗나간 스토리였는데, 이번달 고리오 영감은 무슨 내용인지 예상조차 되지 않았다.
막연히 러시아 소설이겠거니 했는데, 프랑스 1819~1820년을 배경을 한 부성애 충만한 노인과 그와 같은 하숙집에 사는 시골에서 파리로 공부하러온 대학생이 사회를 알아가는 과정이랄까.
소설 초반 묘사가 너무 구체적인데다 등장 인물도 많고 이름도 어려워 책장을 넘기기 힘들었는데, 중반부 이후 스토리가 구체화되면서 속도가 붙었다.
외젠 라스티냐크라는 시골에서 파리로 공부하러 온 청년이 당시 파리의 사교계를 접하게 되면서 겪게 되는 일들, 가치관의 혼란에 대한 내용으로, 같은 하숙집에 머무는 고리오 영감은 제면업자로 돈을 많이 벌어 두 딸들을 각각 귀족과 사업가와 많은 지참금을 주고 결혼시킨다. (돈은 있지만 신분에 대한 자격지심이었을까..) 그 후에도 남은 재산들을 딸들의 뒷바라지에 다 쏟아부었지만 결국 죽음의 순간에도 딸들의 외면을 받으며 쓸쓸히 죽어간다.
작가인 발자크는 자신이 직접 보고 경험한 19세기 프랑스 사회의 모든 것을 소설을 통해 완벽하게 그려내려는 의도로위해 90편이 넘는 소설을 작성했는데, 이는 인간희극이라는 타이틀 하에 연결이 된다. 한 소설에 나온 인물들이 다른 소설에 반복 등장하는데 인간희극에 등장하는 인물은 총 2000명이라고 하니 얼마나 야심찬 계획인지 짐작하게 한다.
이는 마블 유니버스를 떠올리게 한다.
200년전에 이미 요즘 유행하는 세계관을 창조했다는 점, 그리고 그걸 기획했다는점에서 흥미로웠다.
소설의 내용은 19세기 파리를 아주 현실적으로 묘사했다고 하는데, 등장인물들이 겪는 상황이나 고민의 본질은 요즘과 크게 다르지 않아 씁쓸함이 들었다.
시골에서 아들을 교육시키기 위해 온가족이 희생하여 돈을 마련하고, 그 아들은 하루 빨리 집안을 경제적으로 일으켜야 한다는 부담을 갖고 있다.
일반적인 트랙으로는 도저히 계산이 안되니 사교계 입문이나 도박 같은 숏컷을 고민하는데 이는 월급으로는 집을 사지 못해 주식이나 코인에 관심을 갖는 요즘 젊은 세대를, 자신의 전 재산을 딸들에게 주지만, 그로인해 노년을 초라하고 궁핍하게 보내는 고리오 영감은 자식교육에 올인하고 노후준비에는 소홀한 부모세대를 떠오르게 한다.
200년전이나 요즘이나 고민의 내용이 유사한걸 보면..어쩌면 이는 근본적으로 해결되기 어려운 이슈인가 싶은 생각도 든다. 사람사는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파리나 서울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는 진리.
이 소설을 읽으면셔, 가장 머릿속에 많이 그려지는 장면이 보케르 하숙집에서 하숙생들이 모여 식사하는 모습이었다.
그래서 이 장소를 배경으로 연극을 만들어도 재밌을거란 생각이 든다.
오직 하숙집의 식탁만을 배경으로, 식사자리에서 일어나는 대화만으로 모든 스토리가 설명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숙생들의 모습 하나하나가 인간사회의 축소판이기에 식사장면이 나올 때마다 굉장히 연극적이란 느끼밍 들었다.
그리 행복하지 못했던 발자크의 생애처럼...소설도 왠지 모르게 우울함을 안겨준다.
그래도, 이 소설을 완독하게 되서 뿌듯하다. 나중에 아주 시간이 많을 때, 발자크의 소설을 하나씩 읽어가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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