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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Zone of Interest ; 악의 평범성을 이렇게 냉정하고 한편으로는 격렬하게 표현할 수 있는 콘텐츠가 또 나올 수 있을까?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읽었을 때는 그저 놀라웠다.

유대인 학살을 일으킨 사람이 너무 평범한 사람이었고, 그에 대한 죄책감도 별로 없다는 사실이.

그동안 홀로코스트 영화는 수용소에서의 참상을 적나라하게 묘사해서 그들의 고통에 힘들어하고 악행을 저지를 대상에게 분노케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전혀 다른 문법을 사용한다.

담장 넘어 수용소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소리들로만 간간히 상황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대신 담장 안쪽 수용소 소령의 집과 가족의 너무나 평온한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혼란이  빠트린다.

이런 사람들이 - 가정을 중시하고 집을 가꾸고 웃고 떠들며 행복하게 살아가는 - 그런 끔찍한 짓을 저지르다니.

아니, 담장 반대편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알면서도 그렇게 살아갈 수 있다는게 소름끼친다.

 

출처 : 나무위키

 

어떤 잔인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보다도 주부들의 수다중에 스쳐지나가듯 들리는 대사 - 수용소에 끌려온 사람들의 물품을 자랑스레 얘기하는 - 들이 더 끔직하고 무섭웠다.

언제 끌려왔는지 모르지만 이미 가스실에서 운명을 달리했을 여자의 모피코트를 거울 앞에서 입어보고 립스틱을 발라보고 서랍에 넣는 소령의 아내의 모습은 인간이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를 생각하게 한다.

 

영화 내내 들려오는 담장넘어의 소리는 보이지 않기에 오히려 더 무겁게 다가온다.

공포가 아니라 불편한 감정을 떠올리게 하는 부분이다.

이렇게 영화 내내 들려오는 음악인지 소음인지 모호한 사운드는 엔딩 크레딧에서 절정에 달해 청각에 집중하게 만든다.

사운드에 압도된 탓인지 영화의 울림 때문인지 엔딩 크레딧의 마지막까지 관객 중 한명도 자리를 뜨지 않았다.

 

집에 돌아오는 내내 그리고 이후 며칠간 영화의 여운이 길게 남았다.

내가 인지하지 못하면서 악을 저지르고 있는건 아닐까 두려운 마음도 생기고.

 

이런 영화를 만든 사람은 누구일까 궁금해져 뒤늦게 정보를 찾아봤다.

아카데미 시상식 5개 부문에 노미네이트가 되었고, 이 중 국제장편영화상과 음향상을 수상했다고 한다.

조나단 글레이저 감독은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를 비현실적이라고 느끼게 만드는 아이러니한 연출을 했다.

끔찍한 악행을 저지르거나 방관하면서 너무나 평온한 일상을 사는 사람들이 실제로 있었다는 사실이 관객을 더 충격에 빠트린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동이었다. 스토리에 대한 감동 뿐 아니라 너무나 훌륭한 작품을 접했을 때의 감동.

오래전 '유레루'라는 일본 영화를 보았을 때가 떠올랐다. 

'우리의 기억이 얼마나 주관적인지, 왜곡 될 수 있는지를' 공감가게 풀어낸 스토리에 매료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추천을 했었더랬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를 보고나니 문득 그 영화가 다시 보고 싶어져 BTV에서 찾아내 다시 보았다.

좋은 작품이 주는 감동은 시간이 흘러도 여전하다.

 

나의 역할이라는 이유로 누군가를 힘들게 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 때 '존 오브 인터레스트'를 다시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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