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정도의 회사생활 동안 나도 여러번 이직을 했고, 많은 사람들을 떠나보내기도 했다.
통상 누군가를 떠나보낼 때는 마냥 부러웠다.
그들이 어떤 상황인지, 어떤 조건으로 가는지 모르지만 어딘가 새로운 곳으로 간다는 것이 능력있어 보였다.
그러다 어느정도 직급이 올라가 팀의 리더가 되고 나서는 같이 일하는 팀원의 이직에 대해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개입하기 때문이다.
업무가 당장 영향을 받기 때문에 이직하는 친구를 응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섭섭한 마음과 당장 공백을 메워야 한다는 걱정이 올라왔다.
그럼에도 적지 않은 이직을 경험한 나로써는 회사를 떠나올때 남아있는 사람들의 태도가 그 회사에 대한 기억에 가장 큰 영향을 준다는걸 알기에 상황에 관계없이 퇴직 날짜나 인수인계 등을 떠나가는 직원에 100% 맞춰줬다.
보통 대기업은 시스템 중심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퇴사 확정 후 일주일 정도만 출근해서 인수인계를 하고 나머지는 휴가처리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야 새로 시작하기 전에 2~3주 정도를 쉴 수 있으니. 일주일 출근하더라도 실상 인수인계는 하루이틀이면 끝나고 나머지는 그친구가 주변정리를 하도록 배려한다. 그동안 같이 일하고 도움을 받았던 사람들과 작별할 시간을 주기 위해서.
가장 기억에 남은 퇴사자는 컨설팅 회사로 이직하고 나서 첫번째 프로젝트를 했을 때였다.
대기업에 있다가 익숙치 않은 컨설팅사에서 처음 맡은 프로젝트였고, 해외시장의 마케팅 전략을 수집하는거라 짧은 프로젝트 기간에 2주간의 해외출장도 있었고, 유통 및 소비자조사도 병행해야되어 일정이 타이트했다.
그런데 당시 프로젝트 실무를 담당했던 친구가 프로젝트 중반쯤 퇴사 선언을 했다. 이전부터 대표와 사이가 좋지 않았는데, 프로젝트를 하면서 불만이 커졌고 도저히 더이상 못하겠다며 손을 들어버린 것이다.
대표는 사규를 대며 프로젝트가 마무리될때까지는 그만두지 못한다고 했지만 그 친구의 여러 상황을 고려할 때, 계속 다니는게 최선은 아니라는 생각에 대표를 설득해서 원하는 대로 퇴사처리를 할 수 있도록 도와줬다.
그덕에 프로젝트 마무리를 위해 나를 포함 남은 사람들이 쌩고생을 했지만 그 친구를 원망하지는 않았다.
그 나름대로 더 버티지 못할 이유가 있었을거라고 생각했다. 나에게 굉장히 미안해했던 그 친구는 이후 다른 회사에 취직할 때 나에게 reference check을 부탁하기도 했다.
이후 시간이 흘러 나는 다시 대기업에 왔고 부서장이 되었다.
불과 2~3년 전만하더라도 대졸자들의 취업순위 상위에 랭크되었으나 최근 이직하는 친구들이 많아졌다.
뉴스에도 나오듯이 빅테크, 핀테크 기업으로의 이동이다.
예전엔 삼성 SK, 엘지 등 대기업이 취업선호 1순위였지만 지금은 카카오, 네이버, 토스, 라인, 배달의민족 등 소위 잘나가는 IT기업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주로 과장급 친구들의 이직이 심심치 않게 들려오던 차에, 우리부서에서도 한명이 이직을 선언했다.
통계업무를 담당하는 친구인데 객관적으로 볼 때 이직하는 곳이 그닥 매력적이지 않은데다 조건도 그저그래서 의아했는데 이곳에서 2차례 승진이 누락된것이 결정적인 계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부서원이 많지 않기에 주변에서는 무조건 잡으라는 말들이 많았다. 회사차원에서도 젊은 인력들의 이탈에 신경이 쓰이니 크게 문제가 있는 직원이 아니면 잡으려는 입장이었다.
두어차례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는데 본인조차도 갈등하는 상황이었지만 최대한 객관적인 정보를 주려고 노력했다. 아무래도 처음 이직하는 거고 해당 기업에 대한 선호보다는 현재를 벗어나고 싶은 이유가 크다보니 이직하려는 회사에 대한 정보도 많지 않아보였다.
나도, 작년까지 부서장이었던 분도 그 친구와 면담하면서 설득하고 회사에서도 나름 좋은 조건을 제시했는데..그 친구는 딱 3일간의 고민끝에 최종적으로 이직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나의 경험에 비추어봐도 한번 내뱉은 말을 다시 집어넣는게 쉽지는 않았으리라.
안타까운건 내가 만약 부서장의 입장이 아니었다면 더 적극적으로 이직을 말렸을텐데 그렇지 못했다는 것이다.
부서장을 떠나 이직 경험자로서 객관적으로 얘기하더라도 그 친구 입장에서는 나와 부서의 입장에서 얘기하는 거라고 생각할 수 있기 떄문이다.
그렇기에 더 솔직하게 그리고 직설적으로 해주고 싶은 얘기가 많았지만 애써 참아야했다.
그 친구가 최종 결정을 얘기하고 난 후에는 이런저런 얘기없이 이직을 축하하고 응원하는 얘기만 해주었다.
그럼에도 비슷한 경험을 한 나로써는 그 길이 순탄치않을 걸 알기에..많이 안타깝다.
물론 그 친구가 복이 많아서 예상과 달리 좋은 사람들 틈에서 마음껏 원하는 업무를 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러기를 바라는 것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일 뿐이다.
한가지 확실한건 그 친구는 어쩌면 커리어 관점에서 모험을 시작했다는 거다.
그 모험이 순탄치만은 않겠지만 누구나 겪지 못하는 값진 경험을 하게 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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