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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의 기쁨과 슬픔

악의 평범성 : 침묵하는자 모두 유죄?

TVN책읽어 드립니다TV프로그램에서 한나 아렌트가 쓴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 대해 다룬 에피소드를 본적이 있다.

출처 : 교보문고 홈페이지

나치시절, 나치의 유태인 학살에 주도적으로 나섰던 유태인 아돌프 아이히만이 체포된 후 예루살렘에서 받은 재판에 관한 이야기였다.

권력사회에서 명령을 받고 악을 집행하는 사람은 본인 행동의 선악에 대한 가치판단 없이 단지 주어진 업무를 충실히 수행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악을 저지르는 사람의 대부분은 우리가 예상하는 것처럼 본래부터 악랄하고 잔인한 성품이 아니라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 따라서 악이란 시스템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 악을 의도하지 않고 수동적으로 저지르는데 악의 본질이 있다고 작가는 말한다.

그때는 그래 그렇지..라고 단순하게 생각했다. 아마 '내가 그런 상황에 놓일일이 있을까'란 생각이 깊은 공감을 이끌어내지 못했던 것 같다.

그렇게 잊고 있다가 최근에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란 책을 읽으면서 그 이야기가 좀 더 가깝게 다가왔다.

그 책은 여러 철학자나 심리학자의 주장 및 연구에 대해 짧고 쉽게 정리한 내용이었는데, 거기에도 예수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책을 통해 한나 아렌트가 주장하는 내용과 스탠리 밀그램의 너무나 유명한 아이히만 실험대한 얘기가 나왔다

스탠리 밀그램의 실험도 마찬가지로 어떤 일을 해야한다고 지시를 받으면 그 일에 대한 옳고 그름 보다는 지시에 따라야 한다는 생각이 더 강해서 상대방이 괴로워하는걸 보면서도 계속 악행을 저지르게 된다는 내용이다.

이는 오늘날 관료제의 성격을 띄고 있는 사회조직에서 악한 행동을 하는 주체자의 책임 소재가 애매할수록 타인에게 책임을 전가하며 악한 행동을 저지른다고 말한다. 그리고 대기업과 같은 과도한 분업체제하에서는 많은 사람이 업무를 분담하기 때문에 시스템 전체의 책임 소재는 애매해지고 책임을 전가하기에 쉬운 환경이 조성된다고 볼 수 있다.

출처 : 교보문고 홈페이지

 

아마도 직장에서 일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자신의 회사가 판매하고 있는 상품이나 서비스가 고객들의 삶을 더 편리하고 행복하게 만드는 일이라고 믿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습기 살균제, 자동차 회사의 연비 속이기 등 그런 믿음에 반하는 사건이 계속 나오고 있는 건 아마 회사가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직장에서 월급을 받는 것에 대가로 내가 최우선으로 해야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나의 직장생활을 떠올려보았다. 내가 해야한다고 생각하는 일보다 위에서 시키는 일이 항상 우선순위가 되고, 가끔 시키는 일이 납득하기 어려워 괴로워하다가도 어차피 얘기해봤자 안먹히니 그냥 하자라는 생각을 할때가 많다. 윗사람의 생각은 바뀌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그것이 맞냐 틀리냐에 대한 건전한 논쟁을 할 시간 자체가 아깝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켜본바에 따르면 위에서 시키는 일에 토달지 않고 따르는 사람이 직장에서 인정을 받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직장생활을 잘 하는 사람들이라고 얘기했었다.

그런데, 위 두권의 책에서는 그것 자체도 악이라고 표현한다. 그리고 누군가는 그런 행동이 잘못되었고, 그렇게 행동하면 안된다는 것을 상기시켜 주기만 해도 사람은 권위에 대한 복종을 멈추고 양심과 자제심에 근거한 행동을 취한다고 한다.

위에서 시키는 잘못된 방향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것이 자칫 딴지를 거는 것, 부정적인 사람이라는 인식을 줄까봐 동료들과 푸념만 하고 정작 공식석상에서는 의사표현을 꺼려했던 내가 부끄러워졌다.

물론, 당장 내일부터 거침없이 내 의견을 말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러나, 회사가, 국가가 하는 것들을 무조건적으로 지지하고 따르기 보다는 한번더 객관적인 입장에서 거리를 두고 가치판단을 하기위한 노력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일하는 회사는 그리고 내가 살고 있는 나라는 나뿐만 아니라 후배가 그리고 후손들이 계속 살아가야하는 곳으로 나에겐 책임감을 갖고 올바르게 지켜나가야할 의무가 있다.

그러니 나와 생각이 다른 의견에도 귀를 기울이고, 또 나와 같은 생각일지라도 한발자국 떨어져 과연 옳은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관대함과 여유를 가질 필요가 있겠다.

부디 오늘 나의 다짐이 계속 이어질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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