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집과 회사만을 반복하다보니 답답해서 주말에는 사람없는 길을 걷고 있다.
평소 다니지 않던 길을 하염없이 걷다보면 우리 동네에 이런곳이 있었나 싶은 숨은 장소들을 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오늘은 주중에 못한 마스크를 사기 위해 느지막히 집을 나섰더니 집근처 약국은 이미 품절이라 앱을 보고 아직 판매중인 약국을 찾아가다 보니 꽤 멀리 와버렸다.
다행히 햇살도 좋고 날씨도 그리 춥지 않아서 오랫동안 움츠려 있던 몸도 풀겸 골목을 누비고 다녔다.
그러다보니 출퇴근 할 때는 여유가 없어 보이지 않던..봄꽃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벚꽃도 꽤 활짝 피었고, 개나리도 노란색 꽃과 연두색 잎이 싱그럽다.
그러다 발견한 땅에 떨어진 목련 꽃잎, 목련 꽃잎은 땅에 떨어져 밟히면 갈색으로 변해버린다.
어릴적 우리집에는 큰 자목련과 백목련이 한그루씩 있었다. 아빠가 화초를 기르는걸 좋아하셔서 마당에는 앵두나무를 비롯, 백합, 수국, 철쭉 등 각종 꽃들이 가득했다.
봄이 되면 메마른 나뭇까지에 뺴꼼 내미는 초록초록한 아기 잎사귀도 좋고, 따뜻한 햇살을 먼저 받겠다고 경쟁적으로 꽃을 피우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좋았다.
특별히 좋아하는 꽃이 있었던 건 아닌데.. 이상하게도 백목련은 예쁘다는 생각을 못했던 것 같다.
잎보다 꽃을 먼저 피우는데, 짙은 갈색의 메마른 나뭇가지에 덩그러니 크게 피는 꽃이 왠지 성급하다고 생각했다
반면, 꽃잎이 자주색이 자목련은 잎이 난 다음에 핀다. 초록색 잎이 자주색 꽃잎을 더 돋보이게 하고, 더 생명력이 느껴지게 한다. 마치 카리스마 있는 우아한 벨벳 드레스를 입은 여왕의 모습을 연상한달까... 초록의 나뭇잎은 여왕을 호위하는 근위병이기에 여왕은 천천히 맨 마지막에 그 자태를 드러낸다.
반면, 백목련은 여왕으로 보이고 싶어하는 참을성 없는 백작부인 같은 느낌이었다. 뭐가 그리 급하길래 잎을 틔우기도 전에 꽃부터 활짝 피우는지..잎을 틔운 이후에 피었더라면 우윷빛 꽃잎이 더 빛났을텐데…마치 '내가 가장 이뻐, 먼저 보여줄꺼야' 뽐내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뭔가 처연한건.. 그 하얀 꽃잎이 땅에 떨어지면 다른 꽃에 비해 훨씬 볼품없이 갈색으로 변해버린다.
뜬금없지만 오늘 땅에 떨어져 색이 변한 백목련 꽃잎을 보면서 우리의 삶이 떠올랐다.
학창시절을 거쳐 사회생활에서도 우리는 늘 경쟁에 시달린다. 어떻게 보면 우리는 그렇게 해야한다고 배웠고, 몸소 체험하면서 살아왔다. 그렇게 치열한 경쟁을 뚫고 좋은 대학을 가고 좋은 직장을 가고 동기들을 제치고 승승구하다가 어느날 갑자기 회사에서 퇴출되는 사람들을 볼때가 있다.
올해도 동기보다 빨리 승진하고 임원이 되었던 한 분이 회사를 떠나야했다. 자세한 사정은 모르지만...누구보다 빨리 피어올랐다가 급하게 지면 꽃잎이 한장 한장 바닥으로 떨어져버리는 백목련처럼 씁쓸한 여운을 남긴다.
빨리 내가 좋아하는 자목련이 피면 좋겠다. 자신을 더 돋보이게 해줄 연두색 잎사귀가 삐죽 나올때를 기다렸다가
조금 늦더라도 힘있고 우아하게 피어나는 모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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