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떠오르는 콘텐츠 트렌드 중 하나는 하이퍼리얼리즘이라고 한다.
BeReal이라는 SNS가 미국, 영국에서 MZ세대를 중심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는데, 이 SNS는 사진을 찍을 떄 설정이나 보정을 할 시간적 여유를 주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찍어 포스팅하도록 하도록 시간 제한을 둔다고 한다. 보여주기식 SNS활동에 지친 사람들이 꾸미지 않은 그대로의 모습을 공유하는 것에 빠지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날것의 매력을 보여주는 드라마가 있다.
바로 '나의 해방일지'. 전작 '나의 아저씨'로 골수 팬들을 확보한 박해영 작가가 4년만에 선보인 신작이라고 한다.
나 또한 '나의 아저씨'를 인생 드라마라 칭하며 좋아했기에 한주 한주 드라마에 끌려다니기 싫어서 드라마가 종료된 후에 몰아보기를 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그런 결심은 2회를 못넘기고 무너졌다.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 재방송을 접하고는 빠져들어 주말만을 기다리고 있다.
스토리는 차치하고 드라마를 보며 생경함을 느겼던 것은 매우 사실적인 영상 때문.
마치 인간극장을 보는 것처럼 드라마에 등장하는 장소와 배우들의 옷차림, 화장에 꾸밈이 없다.
특히, 주인공 삼남매는 모두 한 외모 하는 사람들인데 누구하나 튀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 배역 자체에 고스란히 녹아든다.
김지원 배우는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직장 동료들 중에서도 진짜 외모에 신경안쓰는 사람처럼 지극히 평험한 옷차림을 한다.
가끔 가정형편이 매우 어려운 상황을 연기하는 배우들도 완벽한 메이크업과 화려한 옷차림에 힐을 신는 모습으로 등장하는데, 김지원 배우는 경기도에서 서울로 전철을 타고 장시간 출퇴근하며 대안이 없어 회사를 꾸역꾸역 다니는 우리 주변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유독 식사장면이 많이 나오는데, 그 장면 또한 다큐같다.
특별히 예쁜 식기나 과한 상차림이, 그렇다고 과장되게 초라한 상차림이 나오지 않는다.
그냥 우리네 평범함 식사의 모습이다. 게다가 밥먹는 동안 대화가 거의 없어서 너무 현실감이 느껴져 웃음이 나올 때도 있다.
그런데 그런 모습이 묘하게 위안이 된다.
그래, 우리가 사는 모습이 저렇지. 별다를 것 없는 지루하고 힘든 나날들의 연속이다. 대부분은 버텨낸다는 생각으로 드라마속 대사처럼 소몰이하듯 나를 끌고가면서 살아간다.
그러다 가끔 친구를 만나거나 가족들과 화목한 식사를 하거나 아주 가끔 여행을 가는 것. 그게 대부분의 평범한 삶이 아닐까.
드라마에서 나오는 맨날 행복하고 잘먹고 잘 노는 모습은 극히 일부일 뿐. 압축되어 스토리를 보여줘야하는 하는 드라마는 그런 이벤트 중심으로 보여줄 수 밖에 없는데 우리는 그를 보면서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끼거나, 혹은 내가 잘못 살고 있는건 아닌지 두려워질 때가 있다.
그래서 나의 해방일지를 보고 있으면 이상하게 마음이 편하다.
마음속으로만 생각하고 차마 내뱉지 못하는 졸렬한 생각들을 드라마속 배우들이 거침없이 얘기하거나 행동하는 걸 보며 내가 보잘것 없는 존재가 아니라 그냥 평범한 사람이라는걸 말해주는 것 같다.
불과 반정도 지났지만 이미 공감 10000%의 명대사들이 쏟아지고 있다.
그런데 나는 유독 김지원이 회사 행복상담소의 상담직원과의 얘기하는 장면에서의 한 구절이 마음에 박혔다.
'이제는 마음에 있는 말들을 그냥 내뱉어요. 그러고 나면 이상한 감정이 들어요. ....내가 사랑스럽게 느껴져요'
'나의 아저씨'가 종영된지 꽤 흘렀지만 여전히 종종 생각나고 그럴때마다 OST를 즐겨 듣는다.
'나의 해방일지'도 그런 드라마가 될 것 같다. 내 삶이 초라하다고 느껴질 때, 희망없이 답답하게 갇혀있다고 느껴질 때, 꺼내보고 싶은 드라마. 조용히 나를 위로해주며 내가 나를 조금 더 사랑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그런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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