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 휴가를 내고 오랜만에 서울에 올라온 언니랑 용산 노보텔에서 호캉스를 보냈다.
용리단 골목의 식당과 카페는 불금과 할로윈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가득찼다.
날씨는 더할나위 없는 청명한 가을 그 자체였고.
토요일밤 이태원 사고 소식을 속보 자막으로 접하고 그저 몇명 다치고 말았겠거니 생각하고 잠들었다 일요일 아침 뉴스를 보고 믿어지지 않았다.
2022년 서울 한복판에서 압사사고로 30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다니.
종일 뉴스를 보면서도 비현실적인 느낌이 떠나질 않았다.
그 탓인지...기분이 우울하고 몸도 무거웠다.
다행히 내 주변의 사람들이 다치지 않아 직접적인 여파는 아닐텐데 어제 아침 잠에서 깰때부터 우울한 기분은 표정과 태도에 배어나는 듯 했다.
그래서인지 나의 행동은 지극히 사무적이었다. 월요일 출근하자마자 또다른 담당자들을 불러서 SNS에 추모 포스팅을 할지, 이번주 올라갈 콘텐츠 중 꼭 올려야하는 것만 게시하기로 결정하고, 이번주 1일부터 예정되었던 이벤트 신청기간을 차주로 미루면 문제가 있을지를 제휴사와 검토하라고 지시헀다.
그리고나서 회의에 참석하고 나니 오전이 지나갔고, 오후에는 캠페인 일정 체크를 위한 회의를 하고 나니 3시가 훌쩍 넘었갔다.
여전히 몸은 무거웠고, 나의 굳은 표정에 영향을 받는 부서원도 있는 듯 했다.
사고와 나의 기분은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나조차도 나의 기분을 이해하지 못했다.
습관적으로 일정을 보내고 평소보다 20분 정도 일찍 잠에 들었다가 새벽에 잠이 깨었다. 저녁 운동탓인지 종아리가 저릿하고 생리전 증후군처럼 아랫배가 불쾌하게 아팠다. 그러면서 모든게 다 귀찮고 그냥 계속 자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다.
그러다 불현듯 이게 우울증인가...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유없는 무력감.
회사업무 생각이 밀려오면 다 때려치고 싶다는 생각 한편, 그걸 떨쳐내기 위한 노력으로 감사한 일들을 억지로 짜내기 시작했다.
엄마가 여전히 건강하게 살아계심을, 불황에도 여전히 출근할 회사가 있음을, 내가 할일이 있음을, 이렇게 아침에 깨어날 수 있음을... 더 이상 생각나지 않았다.
감사도 연습이 필요한가... 이 참에 감사일기나 칭찬일기 리추얼을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런 저런 생각들이 엉켜있을 때 알람이 울리고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주말이었으면 아마 알람을 끄고 1~2시간 더 잤을 것이다. 막상 몸을 일으키고 물을 마시고, 스트레칭을 하고, 간단히 먹을 준비를 하고 씻다보면 몸이 무겁다는 생각은 뒤편으로 밀려난다. 퇴사를 꿈꾸지만 한편으로는 그나마 가야하는 회사가 있어서 이정도의 규칙적인 생활이 유지되는 것 같다고 나름 위안하기도 한다.
어쨌든 오늘은 마음을 좀 가볍게 하고 사람들에게도 부드럽게, 다정하게 대하자 다짐을 한다.
출근길에 전에 같은 부서에서 근무하던 친구를 만났다. 그리 좋은 사이는 아니었지만 반갑게 인사해주니 기분이 좋아진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회사직원 자녀의 부고소식을 듣는다. 지난 주말 이태원 사고의 희생자이다. 복무를 끝내고 복학을 준비하던 중이었단다. 그런 아들을 잃은 부모의 마음은 어떠할까..차마 상상도 되지 않는다.
그러면서 이렇게 아무탈없이 출근하고 있음에, 가족들 중 크게 아픈 사람이 없이 다들 잘 살아가고 있음에 감사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사한다'가 아니라 '감사해야한다' 이다.
한편으로는 내가 일어나기 싫었던, 이렇게 일찍 시작하고 싶지 않았던 하루가 누군가에게는 누리지 못한 하루라는 것에 생각이 미쳤다.
이런 소중한 시간을 불만과 불평과 우울한 마음으로 보내면 그 사람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매순간 감사하고, 나에게 그리고 타인에게 조금은 너그러워야겠다고 다짐한다.
황망하게 생을 마감한 분들은 부디 좋은 곳에서 편히 쉬며, 좋은 삶으로 다시 태어나길
그리고 가족과 지인을 잃은 분들은 충분히 슬퍼한 후에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힘을 얻어 씩씩하게 살아나가기를
마음 깊이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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