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는 보통 가볍게 읽어넘어가는 글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책은 쉽게 읽히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튕겨나가기 보다는 깊숙이 빠져드는 느낌.
이렇게 일상에 대해 혹은 나와 가까운 사람들에게 대해 진지하게 바라보고 사유한 경험이 없던터라 새로울 것 없는 내 일상이 굉장히 가치있는 것으로 둔갑한 것 같다.
누구나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유사하게 겪었을 사건들을 풀어낸 글을 읽다보니 역시 작가는 아무나 되는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녀가 겪은 엄마, 질병, 죽음에 대해 공감하면서 그림자처럼 가까이 있어 오히려 더 의식하지 못했던 것들을 떠올릴 기회가 있었던 것도 좋았고, 이런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통해 사회구성원으로서 타인에 대한 공감, 감정이입의 필요성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또한 중간 중간 녹여낸 타인의 삶 - 메리 샐리, 체 게바라, 싯타르타 - 을 읽으며 이들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고작 20살 정도의 나이에 프랑켄슈타인이라는 소설을 쓴, 천재성을 가졌지만 순탄치 않은 인생을 살아간 메리 샐리가 궁금하다. 영화로만 봤던 프랑켄슈타인을 책으로도 읽어봐야겠다.
그녀가 어떤 계기로 이런 스토리를 생각해냈는지 모르겠지만 책의 소재는 책이 쓰여진 200여전보다 조만간 physical AI와 함께 살아갈 우리들에게 더 밀접하다고 할 수 있으니, 어쩌면 프랑켄슈타인을 통해 AI와 공존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을 수도 있지 않을까.
아름답지만 화려하지 않은 문체로 진지하지만 지루하지 않게 엮어낸 스토리를 통해 개인적 소재에서 사회적인 이슈를 자연스럽게 끌어내는 뛰어난 작가를 발견해서 기쁘다.
[멀고도 가까운..이란 책을 읽다가 공감하는 구절]
"정말 좋은 이유가 없다면 절대로 모험을 거절하지 말자."
모험은 두 손으로 덥석 받을 많은 이유가 있었다. 마치 책이 하나의 문이 된 듯했다. 사람들이 책을 통해 들어와 내 삶에 발을 들이밀고 나를 그 삶으로 이끈다
도서관은 이상적으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하지만 일어났던 모든 일이 저장되어 기억되고 삶을 되찾는 장소, 종이가 가득한 상자에 세상이 차곡차곡 닮겨있는 곳이다. 책 한 권 한 권이 다른 세상으로 이어지는 문이며, 어린이 책에서 말하는 마법이라는 것도 그에 대한 비유일지 모른다. 도서관은 세상으로 가득찬 은하수다.
모든 독자는 우다오쯔이며, 상상력으로 마음을 사로잡는 모든 책은 독자가 그 안으로 들어가 사라지는 풍경이다.
고통에도 목적이 있다. 고통이 없다면 우리는 위험에 처하게 된다. '느낄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돌보지도 않는다' 당시 나의 상황에 놀랄만큼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말이었다. (나병은 신경을 짓눌러 아무런 감각을 느낄 수 없게 만들 뿐이고, 그렇게 아무것도 느낄 수 없게 되면 환자들은 그 부위를 돌보지 않게 된다. 피부를 상하게 하는 것은 병이 아니라 환자 본인이다.
감정이입이란 당신이 직접 느끼지 못하는 어떤 것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이며...
고통이 몸의 경계를 정하는 것이라면 당신은 감정을 이입함으로써, 그들의 고통에 함께 아파함으로써 어떤 사회 구성체의 일부가 되는 셈이다.
그리고 그들의 즐거움 역시 전염성이 있기는 마찬가지이다.
어떤 감정이입은 배워야만 하고, 그 다음에 상상해야만 한다. 감정이입은 다른 이의 고통을 감지하고 그것을 본인이 겪었던 고통과 비교해 해석함으로써 조금이나마 그들과 함께 아파하는 일이다. 그것은 다른 사람이 된다는 것이 어떤 기분일지 당신 스스로에게 해주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은 고통받아 마땅하다는 이야기, 그 사람 혹은 그런 사람들은 당신과 아무 상관이 없다고 말하는 이야기들 때문에 그런 감정이입이 차단될 수도 있다.
사회전체가 자신은 경계에 있는 소수자들과 무관하다고 여길만큼 무감각해지도록 교육을 받을 수도 있다. 마치 가까이 있는 사람들과 맺은 인간적 관계를 지워 버리는 사람들이 있듯이 말이다.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타인을 이해하고 공감하면서 나의 영역을 확장하지 않고 벽을 쌓으면 그 벽은 어느새 질병처럼 내 영역을 침투해온다는 것. 그러니 불편하더라도 타인을 이해하려는 노력과 그를 바탕으로 한 교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딱 나에게 필요한 상황, 부분인데...과연 그런 노력이 필요한가에 대한 의문
지금까지는 사회생활을 위해 나의 의향과 관계없이 그런 노력을 해왔지만 이제 커리어 측면의 기대가 없는 상황에서
좋아하지 않으면서 그런 노력을 하는게 의미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그렇다고 은둔하는 생활은 아니고 내가 좋아하고 의미있는 만남만 하겠다는 것, 그래서 내 생활을 풍부하게 가져가겠다는 마음인데...어떤게 바람직한 건지 판단하기 어렵다)
고통은 그 사촌겪인 촉감과 함께 온몸에 퍼져있어 자아의 경계 역할을 한다. 하지만 내 안에서 나와 세상을 향해 뻗어있는 신경처럼 감정이입, 연대, 지시 같은 것이 자아의 신체를 경계 너머로 확장해준다
어머니의 얼굴은 놀랄만큼 아름다웠지만 아름다움이란 신체적 특징만큼이나 스스로를 대하는 태도의 문제이기도 했다.
차안에서 우리는 미지의 세계를 선택했던 때에 관해 이야기했다. 그떄 '안갈래요'라고 대답했더라면, 우리는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 영원히 궁금해했을 것이다.
우리의 것이 될 수도 있었을 보물을 거절한 듯한 느낌, 삶을 제대로 살 수 있는 기회를 거절한 것 같은 느낌을 계속 지닌 채 살아야 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모험에 대해, 미지의 것과 가능성에 대해 "네"라고 대답했다는 점이다. (이대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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