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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우리가 잃어버린 것

오랜만에 경제/경영/마케팅/재테크가 아닌 소설을 읽었다.

수동적인 사람인지라...서점에 가서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훑어보아도 마지막에 구매하는 책들은 다 직업이나 재테크에 도움될만한 것들이다.  그로인해 머리가 산성화되어가는 것 같다며 좋은 문장 감성적인 글들을 읽어야겠다고 마음은 먹지만 쉽지가 않다. 그래서 선택한 북클럽.

트레바리처럼 매번 정해진 장소에서 하는 북클럽이 아니고, 내가 좋아하는 책발전소에서 운영하는 거라서 신청했는데

2월의 책은 서유미 소설가의 '우리가 잃어버린 것'이다.

줄거리만 얘기하자면 결혼 후 육아로 인해 경단녀가 된 주인공이 다시 취업을 하기 위해 하루하루를 보내는 잔잔한 이야기로 나와 상황도 다르고 아는 작가도 아니라서 북클럽이 아니었다면 읽게되지 않았을 것 같다. 

 

 '82년생 김지영'을 읽고 공감한 부분도 많았지만 그렇지 못한 부분도 있었던 건 어쩔 수 없이 처한 상황의 차이였기 떄문이리라. 내 한몸 회사다니며 건사하기도 힘든데 아기를 낳고 키우고 살림도 하는 육아맘의 마음을 온전히 공감하기 어려웠듯이 주인공이 겪는 경단녀의 마음도 다 이해할 순 없었다. 설령 내가 충분히 공감한다고 생각할지라도...

그런데 이 책을 읽을수록 주인공의 상황은 중요한게 아니라는걸 깨달았다.

이 책은 싱글이든 혹은 부부든, 육아를 하는 부부든 인생을 살아가는 누구나 겪게 되는 상실에 대한 이야기다.

누구나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이 있듯이 우리의 인생은, 시간은, 한정되기에 동시에 무언가를 선택했다면 무언가는 선택되지 않는 것이다. 

나역시 내게 주어진 하루 중 일부를 누군가에게 할애하기 위해 누군가는 뒤로 밀어둘 수밖에 없었고, 그로인해 인간관계에 변화가 생길 수 밖에 없었다.

사회초년생 시절 회사일을 잘해내고픈 욕심에 저녁 주말 가리지 않고 나에게 주어진 여가시간을 일을 잘하기 위해 공부하는 것에 써버리던 때가 있었다. 출근전 영어학원에 다니고, 퇴근후에는 익숙하지 않은 문서작업과 영문이메일을 보내기 위해 10시 11시에 퇴근하는게 일상이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대학시절 친구들과의 모임에 한두번 빠지다보니 어느순간 연락이 끊긴 경험이 있다.

 

그리고 가끔은 이유를 알지도 못한채 연락이 멈춰버린 친구도 있었다.

다니는 회사가, 분야가 다르다보니 대화에 서로 공감하지 못하는 부분이 생기고 서로 바쁜 시점이 달라서 약속잡기가 어렵다보니 한번 두번 만남이 미뤄지다가 자연스럽게 연락하지 않게된 것이다.

문득 그 친구의 안부가 궁금하긴 하지만 연락처도 바뀌고..SNS로 찾을 수도 있겠지만 상대방이 반가워할까..라는 소심함에 마음을 접었었다.

그래서 그런지 주인공이 친구들의 모임에서 멀어지다 아이 돌잔치에 아무런 연락도 없이 친구들이 찾아오지 않자 조용히 단톡방을 빠져나가는 장면에서는 마음이 뭉클했다.

동일한 상황은 아니지만 우리는 살아가면서 비슷한 상황을 겪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의도가 없었지만 상처를 받게되는 그러면서 왜 그런 상황이 오게 되었는지 알지 못한채로 상대방에게 서운해하다 결국에는 자신을 책망하게 되는 경우.

나 역시 그런 경우에 '그때 내가 먼저 연락을 했더라면... 그 친구의 부탁을 들어주었다면... 먼저 자주 안부를 물었더라면...' 이라는 후회를 한적이 많다. 물론 어떤 경우는 나의 노력으로 상황이 바뀌었을 수도 있지만 어쩌면 우리가 나이들어가는걸 막을 수 없듯이 우리의 관계가 그렇게 흘러가는 것도 어쩔 수 없는게 아니었을까.

 

우리가 잃어버린 것에 대해 생각하고 후회하며 그를 다시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기 보다는 지금 내가 갖고 있는 것 내가 서 있는 자리를 둘러보는 것에 시간을 쏟아야 되지 않을까.

21년 2월 21일의 내가 서 있는 곳에 좌표를 찍고 앞으로 가야할 방향을 설정하는 것에 집중하는 것.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 아닐까 한다.

 

지난주의 매서운 추위가 무색하게 햇살이 따뜻하고 바람조차 훈훈하다.

제아무리 겨울이 발목을 잡아도 봄은 오는 것이다.

지난 겨울은 추억으로 묻어두고 다가올 봄에 대한 기대를 품어보는 2월 후반부가 되면 좋겠다.

 

 

p.s. 서유미작가의 책은 처음 읽었는데, 표현력과 문장이 너무 좋아서 다른 책도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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