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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

호텔, 로컬과의 상생을 추구하다 ; 핸드픽트, 굿올데이즈

2년전, 폴인을 통해 알게된 핸드픽트 호텔

강남이나 이태원처럼 핫한 동네도 아니고 그렇다고 명동, 종로처럼 관광객이 많은 동네도 아닌 상도동에 위치한 호텔.

궁금함에 관련 아티클을 읽고 로컬과 상생을 추구하는 컨셉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포틀랜드의 에이스호텔이 해당 지역을 활성화시켰던 것처럼 오래된 상도동에 젊은사람들을 유입시켜 활기를 띄게 만드는 것. 더불어 상대적으로 좋은 공간이 부족했던 로컬주민들에게 멋진 공간을 제공해주는 것.

괜찮은 공간, 가게 하나가 동네 분위기를 바꿀 수 있다는 것에 공감하기 때문에 당장 가서 확인해보고 싶어 스케줄이 비는 주말에 예약했다.

강남에서 얼마 떨어지진 않았지만 상도동에 진입하자 마치 지방 소도시에 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

오래된 건물들 사이에 깔끔하고 반듯한 모습의 호텔이지만 이질적인 느낌은 들지 않아, 나혼자 돋보이겠다는 느낌보다는 주변과의 조화를 신경쓴 느낌이 들었다.

1박 2일을 머물면서, 마치 다른 도시로 여행을 간듯 천천히 동네를 돌아다니며, 작은 카페에 들어가 커피를 마시며 사장님과 얘기도 하고, 동네주민이 많아 보이는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동네 분위기 탓인지 느긋해지고 휴식을 취하는 느낌이 들었다. 

호텔에서 운영하는 카페와 식당에는 동네주민들과 나처럼 호텔이 궁금해 놀러온 젊은친구들이 뒤섞여 있었지만 누구하나 불편해보이거나 이질적으로 느껴지지 않고 자연스러웠다. 호텔에서 의도하는 바가 이런 모습이겠구나 싶었다.

 

그리고 한달전쯤 롱블랙에서 부산의 굿올데이즈란 호텔을 알게 되었다.

부산 구도심 중앙동에 위치한 호텔. 부산엔 여러번 갔지만 부산역에서 내리면 곧장 해운대 근처로 이동해서 이 동네를 볼 기회가 거의 없었다. 대학교때 친구들과 부산에 여행갔을 때, 자갈치 시장을 보러 갔던 게 거의 유일.

한때 부산 최고의 번화가였지만 이젠 역사의 뒤안길로 밀려난 구도심, 투숙객에게 그곳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제공하는 호텔.

굿올데이즈란 이름도 Good old days의 의미를 담고 있다.

좁은 골목안 5층 건물로 이뤄진 호텔의 1, 2층은 카페 겸 작은 리셉션 공간이, 3~5층은 객실이 있고, 작은 루프탑 공간도 있다.

1층에는 3,40년간 자리했던 노포들의 모습과 이야기를 담은 사진이 비치되어 있고, 노포들을 담은 동네 지도도 준비되어 있다.

여행갈 때 맛집을 찾기 위해 검색에 바빴다면 이곳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다. 정성스레 적은 노포에 대한 소개를 읽어보고 마음에 드는 곳을 고르기만 하면 대부분 걸어서 10분 이내에 위치하고 있으니까.

만약 선택이 어렵다면, 직원들에게 추천해달라고 요청해도 좋다. 붐비는 정도까지 알려줘서 괜한 발걸음을 할 수고도 예방할 수 있으니.

숙소에 들어가면 널찍한 침대 위에 투숙객을 위한 선물이 놓여있다. 굿올데이즈 로고가 생긴 펜과 투숙기간 동안 작성해서 누군가에 부칠 수 있는 엽서와 우표. 작은 것이지만 호텔이 어떤걸 지향하는지 짐작하게 한다.

객실의 숙소는 번화함을 뒤로하고 지금은 차분한 중앙동 분위기처럼 투숙객의 지나간 시간, 혹은 현재를 되돌아 볼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한다.

주의를 뺏기기 쉬운 TV가 없고 대신, LP와 음반 3장, 그리고 무겁지 않은 책 2권이 있다.

편안하게 숙소와 동네에서 시간을 보내길 바라는 호스트의 마음이 담겨있다.

객실의 하이라이트는 널찍한 책상 한켠에 자리잡은 문구들이다.

좋은 연필과 펜, 색연필, 갖가지 마스킹 테이프와 방명록, 모닝노트들이 구비되어 있어 머무는 동안 생각이나 감정을 기록할 수 있게 한다.

아니, 기록하고 싶은 마음이 솟아나도록 곳곳에 넛지를 만들어놓은 것이다.

여기서는 천천히 여유있는 여행을 하라고 얘기하듯이 인스턴트 커피가 아니라 원두가 준비되어 있다. 그라인더에 원두를 갈아 놓고 뜨거운 물을 천천히 부으면 커피향이 방안에 가득하다. 통창으로 들어오는 햇살과 커피향, 그리고, 킹즈 오브 컨비니언스의 음악.  그 자체로 휴식이다.

냉장고를 열어보면 넉넉한 생수와 함께, 부산 소규모 브루어리의 맥주와 그와 어울리는 한입치즈, 부산을 대표하는 기업중 하나인 삼진어묵의 어묵바가 있다. 모두 무료라 투숙객들에게 부산 기업의 제품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관광객은 거의 없는 듯한 동네라 밤이 되어도 조용한 편이다.

편안한 침대에서 푹 자고 일어나면 문 앞에 작은 피크닉 바구니가 놓여있다.

열어보면 소박하지만 알찬 조식이 담겨있다. 삶은 달걀, 따뜻하게 구운 스콘, 그리고 냉장고 속 우유와 먹을 수 있는 시리얼과 귀여운 체리 4알.

직접 내린 커피와 함께 먹는 스콘은 행복감을 증폭시킨다.

호텔에 묵게 되면 카페에서 이용할 수 있는 커피 쿠폰을 주는데, 언제든 이용할 수 있다. 

카페에 자리잡으니, 부산을 소개하는 각종 잡지들과 책들이 가득하다.

이번 여행은 짧기에 다음 여행을 기약하며 열심히 메모해 놓는다.

부산에 독립서점에 꽤 많다는 사실도 알게 되어, 다음번엔 독립서점을 테마로 여행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작년말에 오픈한 이 호텔의 영향인지 모르지만 노포들 사이로 새로 오픈한 듯한 카페와 새 건물들이 간간이 보인다.

상도동의 핸드픽트 호텔처럼 회색빛의 구도심에 약간의 컬러를 추가해 생기를 주는 것 같다.

연남동이나 성수처럼 새로운 가게들이 기존 거주민들을 밀어내는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나지 않고 천천히 그리고 조금씩 새로운 가게들이 구도심에 녹아들면 좋겠다.

그리고 굿올데이즈도 지금의 취지를 잃지 않고 부산 중앙동의 랜드마크로, 동네의 구심점으로 오래 지속되면 좋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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