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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뒤늦게 읽은 사피엔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얘기할 때, 왠지 손이 가지 않앗다. 

굉장히 기다리던 영화를 어쩌다가 개봉즈음에 보지 못했는데 주위 사람들 대부분이 그 얘기를 하면 괜히 관심이 식어버리는...

그럼에도 언젠가는 읽게 되리라 생각했던게 10년이 지나버렸고 숙제처럼 남아있었는데, 이번 시즌 트레바리 모임의 마지막 책으로 선정되어 읽게되었다.

두껍다, 어렵다는 말들이 있었지만 '총,균,쇠'와 '지구의 정복자',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와 같은 비슷한 빅히스토리류의 책을 읽은 탓에 그리 힘들지 않게 책장이 넘어갔다.

보통 이런책을 읽을때는 저자의 생각을 따라가기 급급했는데, 이번에도 비슷하긴 했지만 다 읽고 난 후 한번 더 복기하면서 '오 놀랍다, 이런 관점으로 바라보다니'  → '어? 조금 이상한데, 혹은 너무 단편적이지 않나?' 라는 생각으로 바뀐 경우가 몇개 있다.

물론 이렇게 방대한 기간의 역사를 인과관계로 풀어내는게 어렵지만 한편으로 생각하면 그 점 때문에 논리적인 비약도 생기게 되는 것 같다.  

우선 처음 읽을 때, 농업혁명이 인류의 가장 큰 사기극이라는 부분이 새로웠다. 농업혁명을 통해 정착하게 되고, 집단이 커지게 되고, 곡식을 저장할 수 있게 되어 잉여농산물을 다른 것들과 교환하게 되는 등 발전의 시초라고 생각했는데, 저자는 농업을 시작하면서 일하는 시간이 늘어나고 한두가지 곡물에 의존하게 되면서 영양은 빈약해지고 정착하게 되면서 자식을 많이 낳았지만 그만큼 많이 죽게 되었다고 얘기한다. 처음에는 배신을 당한것은 기분이었지만 내가 만약 그 시절의 사람이었다면 수렵채집 생활이 과연 농경생활보다 행복했을까 생각해보면 그렇지만은 않다. 수렵채집은 내일 내가 어떤 동물이나 식물로 허기를 채울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우리에게 가장 힘든건 불확실성 아닌가. 농경은 내가 노력한만큼 (홍수, 가뭄 등 자연현상은 예외지만) 수확할 수 있다는 예측이 가능하지만 수렵은 그렇지 않다. 

만약 농경생활이 수렵채집보다 불행했다면 농경이 정착되지 않았을꺼라 생각한다. 이는 인류의 선택이고, 그 선택에는 단점도 있지만 장점이 더 많기에 그런 선택을 했다고 생각한다.

 

두번째로 새로웠던 것은 우리가 믿는 대부분의 가치가 상상의 실재라는 것이다. 기업, 규범, 돈, 종교 등.

그런데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다 존재하지 않는 상상이라고 할 수 없다.

물리적으로 존재하지 않지만 우리는 사회적 합의를 한 것이다. 그렇게 하기로, 믿기로.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사회가 너무 무질서하고 그런 무질서는 우리의 삶을 힘들게 하기 때문이다. 

 

세번째, 제국주의 시대 유럽이 세계를 제패하게 된 이유는 무지를 인정했기 때문이라는 것. 이 부분은 새롭기도 하고 매우 공감이 갔다.

내가 모른다, 또는 틀릴 수도 있다고 인정하는 것은 많은 가능성을 열어둔다. 더 탐구하고, 그러면서 새로운 지식을 발견할 수 있는 여지를, 그리고 그렇게 하고 싶은 동기부여를 준다.

이는 비단 과거에만 해당하는 일이 아니고 현재에도 마찬가지다.

내가 아는게 맞다라고 생각하면 새로운 생각이나 의견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세상에 절대적인 진리가 있을까?

지금의 지식수준에서는 정답인 것 같지만 과학이 더 발달하여 우리가 몰랐던 것을 발견하게 되면 기존에 믿었던게 틀리게 되는 경우를 종종 경험한다. 결국 내가 모든 걸 알고 있다고 믿고 지금의 상황만을 고수한다면 도태될 수 밖에 없다.

무지의 인정은 새로움, 가능성에 대한 열린 태도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후반부에 행복에 대한 얘기를 한다.

이부분을 읽다가 과연 행복이라는게 뭘까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우리가 생각하는 행복이라는 것이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지 않을까란 생각이 문득 들어서 사전을 찾아보았다.

행복(명사)

1. 사람이 생활속에서 기쁘고 즐겁고 만족을 느끼는 상태에 있는 것

2. 사람의 운수가 좋은 일이 많이 생기거나 풍족한 삶을 누리는 상태에 있는 것

1.의 정의를 기반으로 생각해보자면 사람마다 기쁘고 즐겁고 만족을 느끼는 조건이나 상황들이 다르기 때문에 철학자나 종교인들이 얘기하는 '행복하려면 이러이러해야 한다' 에 대한 일반적인 얘기는 크게 의미가 없지 않을까 싶다.

저자는 불교의 예를 들어 결국 그런 감정에서 벗어나는 상태가 결국 행복에 이르는 길이라고 얘기하는 것 같은데,

그 과정이 고행이라면 과연 그게 의미가 있을까?

최근 너무 행복이란 단어에 사람들이 너무 집착하는거 같아서 이 또한 우리가 행복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에 너무 휩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철학자도 아니라서 이 주제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는 것도 별 소득이 없을 것 같고, 개인적으로는 행복에 대해 정의하기 위해 나는 어떤 상태에 기쁘고 즐겁고 만족을 느끼는가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 내가 하는 일이 좋은 성과를 낼 때 (인정까지 받으면 더 좋고)

- 내가 할 일을 끝내고 여유있게 시간을 보낼 때 (프로젝트를 마친 후 잠깐의 여유 / 일요일 오전 귀찮은 집안일을 마치고 차를 마시며 쉴때)

- 낯선 여행지에서 풍경과 사람들을 구경할 때 (낯선 공기를 느끼는 것만으로도 좋다)

- 읽고 싶던 책이나 영화를 시간에 쫓기지 않고 여유있게 감상할 때

-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얻거나 이루었을 때

...

결국 나는 엄청난 것보다는 일상에서의 소소한 만족에 행복을 느끼는 것 같다. 만족은 내가 시간을 의미있게 또는 재미있게 보냈을 때 찾아온다.

요약하면, 나에게 행복은 의미 또는 재미있는 시간이다.

 

잠깐 샛길로 빠졌지만 유발 하라리는 재능있는 이야기꾼이다. 

방대한 역사를 몇개의 큰 주제로 엮어내는 것을 보면. 이런 시도들이 사람들에게 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것 같다.

 

출처 : 교보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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