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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읽는 금융

견고한 보험시장에 한발을 집어넣은 플랫폼 ; 보험상품 비교추천 서비스

보험은 예기치 못한 사고나 질병, 재해 등을 입었을 때 그 손실을 보전해 주거나 복구하는데 드는 비용을 지원해주는 일종의 사회안전망이기에 규제가 많다. 민간회사가 운영하지만 공적인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규제는 비즈니스를 하는데 각종 제약이 되기 때문에 어려운 점이 많다. 상품을 개발할 때도, 그걸 알리거나 판매할 때도 금융위나 금감원 또는 그들을 대행하는 협회의 심의를 받게 된다. 여간 불편하고 번거로운게 아니다. 기존과 다른 상품이나 영업방식을 시도하려면 지난한 설득의 과정이 필요해서 혁신을 하기 어렵다.

그런데, 이런 규제가 한편으로는 진입장벽이 되기 때문에 기존의 플레이어들에겐 든든한 해자가 되기도 한다.

7~8년전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던 인슈어테크 기업들 중 현재 남아있는 곳은 거의 없다.

대부분 설계사를 중개해주거나 상품을 추천해주고 수수료를 챙기는 플랫폼 형태의 비즈니스 모델이었고, 

전자는 플랫폼의 특성 상 수요자와 공급자가 모두 플랫폼에 익숙해야 하는데,  대부분의 설계사는 나이 지긋한 5~60대로 대면상담에 익숙한 세대였기에 활성화되지 못했고 후자는 상품을 공급하는 보험사들이 당시에는 온라인 전용 (쉽고 단순한) 상품이 많지 않아서 활성화되기 어려웠다. 기본적으로 보험은 복잡한 상품의 구조상 정보의 비대치성이 크고 이를 설계사가 해결해주는 형태였기에 온라인 전용 상품이 성장하기 쉽지 않은 산업이다. 

그럼에도 그 중 자동차보험은 거의 모든 보험사가 적극적으로 온라인 전용상품을 판매해 현재는 전체 시장의 50% 정도가 온라인을 통해 판매된다.  그게 가능했던 건 자동차보험은 자동차를 갖고 있는 사람은 무조건 가입해야 하는 의무보험이고 (설계사의 설득과정이 필요없다) 상품의 구조나 담보 또한 거의 표준화되어 있어서 회사마다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즉, 상품을 가입하는데 있어 설계사의 설명이 그다지 필요하지 않은 상품으로 고객은 주로 보험료와 보상 상황에서의 편리함을 고려해서 가입한다. 그런데 아무리 상품이 표준화되어 있어도 회사마다 보장 범위와 보험료가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자동차보험 만기가 다가오면여러 보험사가 마케팅 문자를 발송한다. 이번에 가입하면 3만원 상당의 주유권을 준다던지, 보험료만 계산해봐도 커피 쿠폰을 준다고 하면서 고객을 유혹한다. 

막상 보험료 계산을 해보면 이게 내가 지금 가입한 보험과 똑같은 조건인지 비교하기는 쉽지 않다. 

이런 고객의 불편함을 발견하여 네이버, 카카오와 같은 플랫폼들은 진작에 보험비교 서비스를 제안했다.

차번호와 몇몇 정보만 입력하면 주요 보험사의 자동차 보험료가 단 몇초만에 일목요연하게 보여진다. 이 얼마나 편리한가.

고객들은 반응하기 시작했고, 플랫폼들은 이를 통해 보험을 가입한 고객들에 대한 수수료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보험사는 수수료라 말하고 플랫폼사는 광고비라 얘기했다.)

그러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보험사의 정보를 가지고 비교 서비스를 하면서 수수료/광고비까지 받아가는 걸 못마땅하게 여긴 보험사는 보험사가 보험을 판매하면서 지켜야 하는 까다로운 규제를 비교추천하는 플랫폼사도 지켜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고,

추천을 통해 고객이 보험을 가입할 때 플랫폼사가 보험사에 요구하는 돈이 수수료냐 광고비냐에 따라서 한도도 달라지고 규제도 달라지기에 양측은 첨예하게 대립했다.  당연히 플랫폼사 입장에서는 광고비라고 주장했다. 그래야 복잡하고 까다로운 보험산업의 규제를 덜 받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객들은 플랫폼사를 믿고 보험을 가입한다고 판단하고 또한 보험사들의 강한 반발에 결국 판매수수료로 본다는 관점으로 기울면서 플랫폼 및 핀테크사의 비교추천서비스는 중단되었다. (서비스를 지속하려면 플랫폼사가 보험 판매자격을 취득해야 그럴 수 없는 복잡한 사정이 있다.)

이후 플랫폼 및 핀테크사들의 설득 (혁신을 이유로)과 정부의 규제혁신 바람을 타고 비교적 표준화된 보험인 자동차보험에 대한 비교추천 서비스를 플랫폼에 허용하는 논의가 계속 되었고, 그 조건을 조율하는 지난한 과정 끝에 보험상품 비교추천 서비스가 '혁신금융서비스'로 지정되었다.

이로서 보험사들은 자신들의 상품이 속속들이 그리고 아주 보기 쉽게 타사의 상품들과 비교되는 상황에 처해지면서 어느회사의 상품이 진짜 경쟁력이 있는지 투명하게 드러날 상황에 놓였다.

게다가 어느 보험사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공정하게 상품을 비교해줄 수 있는 플랫폼, 핀테크사 (네이버파이낸셜, 뱅크샐러드, 토스, 카카오페이, 핀다, 핀크 등등)들의 고객에 대한 영향력이 커짐에 따라 온라인 상품의 판매를 이들에 의존하게 되었다.

이번에 금융당국이 비교추천을 허용한 상품은 자동차보험을 비롯하여 여행자보험, 화재보험, 실손의료보험, 저축성보험(연금제외), 펫보험, 신용보험 등이다. 고객이 필수적으로 가입해야한다는 인식이 높은 자동차보험, 여행자보험, 실손의료보험이 포함되어 있어, 향후 이 상품들의 온라인 가입이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몇년간의 지난한 줄다리기 끝에 일단 플랫폼/핀테크쪽에 승리가 넘어간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커머스가 본격적으로 활성화된 이후 대다수의 산업에서는 이런 비교추천 서비스가 있었고, 보험산업이 그 복잡성으로 인해 늦어졌을 뿐이다.

 

이번 사례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변화의 흐름을 막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사력을 다해 어느정도 늦출 수는 있다. 그렇지만 결국에 맞이해야할 운명이라면 저항하는데 시간과 노력들 쏟기 보다는 충격을 최소하하는 방향을 고민하는 편이 낫다.

마찬가지로 ChatGPT 촉발한 AI에 대한 관심이 불안으로 번지면서 당분간 AI기술 개발을 중단해야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AI의 단점과 위험성을 부각하여 사용하지 말 것을 목소리내기 보다는 어떻게 현명하게 우리의 삶에 활용할 수 있을지를 연구해야 한다.

 

나는 이번의 비교추천 서비스가 제한된 상품으로 시작되었지만 결국 견고한 보험시장에 새로운 플레이어들이 발을 들여놓게 만든 계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단 한발을 들여놓았다면 문을 활짝 열어젖히는 것은 시간문제다.

보험사들은 비교추천서비스가 역행할 수 없는 흐름임을 인정하고, 상품력을 더 높이거나 혹은 그를 보완할 서비스를 향상시킬 방안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고객의 불편에 초점을 맞추어 전에 없던 상품과 서비스를 빠르게 만들어내는 스타트업이나 빅테크 기업들과 함께 경쟁하면서 그들의 장점을 배우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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