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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팅

왜 뉴스레터를 만들어요? 라고 물어본다면

대기업에서 브랜딩을 한다는 것, 그것도 금융사에서 브랜딩을 한다는 것은 생각한 것보다 많은 제약과 도전이 따른다.

첫째는 경영층이 브랜딩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다는 것 - "아직도 우리회사를 모르는 사람이 있나?"

둘째는 브랜딩을 단기적인 이슈 메이킹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 - "재밌는 것 좀 해봐"

셋째는  Specialist 보다는 Generalist를 키우는 인력 정책과 더불어 짧게는 1년 길어도 3년마다 바뀌는 임원으로 방향성이 오락가락 한다는 점 - "이거하지 말고 올해는 새롭게 이거 해봐"

 

그럼에도 이 일에 애착을 느끼는건 그만큼 도전할 일이 많다는 것이다.

바꾸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들

앞에 열거한 이유로 단기적인 이벤트들이 성행하고 광고는 매년 새로운 컨셉으로 진행하여 모아놓고 보면 한 회사의 것인지 눈치채지 못할 정도의 다양성을 보여준다.

한동안 상품 마케팅을 하다가 브랜드 마케팅으로 업무를 바꾸면서 가장 힘을 썼던 부분은 기본을 만드는 것이었다.

기획안을 리뷰할 때마다 가장 많이 했던 말이 '왜' 였다. 이 일을 왜 해야하지? 

당연히 같은 대답이 나올 것을 예상하지만 의외로 부서원이 다른 생각을 하고 있음을 발견할 때가 많다.

브랜딩이 필요한 이유, 현재 우리의 비즈니스 하에서 브랜딩의 역할이 무엇인지, 브랜딩의 방향성은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 이를 구현하기 위해 어떤 활동을 해야하는지를 개별적으로 또는 부서원 전체 회의에서 수차례 얘기를 했다.

그럼에도 어느정도의 공감대를 형성했다고 느끼기까지 1년반이 걸린 것 같다.

물론 모두가 같은 수준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캐릭터를 만들고 싶어하는 사람에게  캐릭터가 '왜 필요한지', '그걸 위해서 캐릭터를 만드는게 최선의 방법인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을 하다보면 피곤해하는 상대방의 표정이 보이고 그럴 때마다 이렇게까지 해야하나..싶은 때가 많았다.

그럼에도 회사는 학교가 아니기에, 충분히 고민하고 기획해야 절반이 성공할까 말까한 비즈니스 세계에서 자신감과 감만 믿고 달려드는 사람을 무조건 지지해 줄 수는 없다.

그 친구가 놓친 부분을 고민할 수 있도록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때로는 그 과정에서 나의 생각을 수정하기도 하고.

 

이제 본론으로 돌아가 뉴스레터를 왜 만드는지에 대해 설명하자면, 브랜딩은 일종의 장거리 경주이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고객이 회사의 진심을 알아차리고 좋아하고 마음을 열어주는 것이다.

금사빠도 있다지만 그런 경우에는 금방 식는 경우가 많다.

기본적으로 관계는 사람간이든 사람과 기업간이든 신뢰에 바탕을 두고, 그런 신뢰는 시간이라는 기반위에서 싹트게 된다.

 

가끔 만나 재밌게 노는 친구도 필요하지만 꾸준하게 연락하면서 얘기하고 고민을 들어주는 친구도 필요하다.

이제까지 대부분의 브랜딩 활동은 전자에 집중되었다. 넘쳐나는 광고 사이에서 그리고 SNS 피드 사이에서 눈에 띄고자 기발하거나 재밌거나 혹은 눈물 쏙빼게 감동적인 콘텐츠를 만들었다.

그런데 알다시피 자극은 더 큰 자극을 원한다.  그리고 자극은 일종의 선을 왔다갔다 해야하는 경우가 많은데, 금융이라는 업의 성격에 비추어 볼 때 과연 그게 맞을까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일단 재밌는걸 만들면 보지 않을까요?, 그러다 오 금융사도 이런건 만드네 하면서 관심이 생기고 그러다보면 우리 상품을 구매하지 않을까요?' 이게 기존의 논리였다. 그런데 솔직하게 말해 이 논리는 통하지 않았다.

재밌는건 거기서 끝이다. 재밌다고 금융상품을 구매하진 않는다. 금융은 재밌으려고 사는 상품이 아니니깐.

궁극적인 목적은 잊은 채, 콘텐츠 하나, 이벤트 하나가 어떤 식으로든 인기를 끌면 성공이라고 생각하는 담당자들과 상사들을 설득하는데 내 업무의 70% 이상을 쏟은 것 같다. 무조건 내 생각을 주장할 수는 없으니, 꾸준한 설득과 더불어 작은 테스트도 병행했다.

 

나는 우리회사가 믿을 수 있는, 진정성 있는 회사로 느껴지길 바랬다. 겉으로 많이 드러내지는 않지만 묵묵히 할일을 하는 회사, 미래를 위해 먼저 고민하고 준비하는 회사라는 이미지, 그래서 우리회사만 생각하면 왠지 든든해지는 그런 회사.

재밌고 트렌디하진 않아도 적어도 자기 할일은 알아서 하는 회사. 말하지 않아도 미리 알고 준비하는 회사.

그런 이미지는 단기간에 임팩트 있는 콘텐츠로 만들기 어렵다.

그래서 시작한게 롱폼 텍스트였다. 조금은 길지만 계속 읽고 싶게 만드는, 때로는 유용한 정보를, 때로는 공감을 통한 위로를 주는 글, 때로는 살아가는데 영감을 주는 글을 통해 하루 10분이라도 차분히 나를 위한 시간을 갖게 만들어주고 싶었다.

 

그래서 '쉼'이라는 주제로 몸/마음의 쉼에 도움을 주는 글들을 시리즈로 출시했었고, 이에 공감하는 독자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에 용기를 얻어 올해 뉴스레터를 만들었다. 대단할거 없는 일상을 묵묵히 살아가는 사람들, 그리고 조금이라도 더 나은 일상을 위해 꾸준히 노력하는 사람들을 위한 글을 실었다. 일주일에 한 번, 우리 글을 통해 일상에 도움이 되는 정보를 얻고, 평범한 하루하루의 일상이 모여 평범하지 않은 결과를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 용기를 주고 싶었다.

 

이제 5개월 정도, 20번의 뉴스레터가 발송되었다. 이런 글들과 결이 맞는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닿고자 구독자 모집을 위한 이벤트를 하지 않다보니 생각보다 구독자수 증가는 더디다. 그럼에도 SNS에 올린 요약글을 보고 뉴스레터 페이지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매월 5~6천명이 넘는다.

구독을 하든 안하든 뉴스레터에 담긴 글을 많은 사람이 읽는다면 그걸로 족하다. 구독은 결국 글을 읽기 위함이니깐.

이 글을 보내는 사람이 누구인지 당장은 몰라도 상관없다. 어느 순간에 궁금해질 것이고 그때 우리회사를 알면 된다.

 

4000자 내외의 비교적 긴 글에 담백한 내용이다보니 떠들썩하게 바이럴이 되지는 않지만 고객들의 반응이 오고 있다.

타회사 사람들의 문의가 오기도 하고, 뉴스레터 큐레이션 플랫폼에도 소개가 되었다. 어느 대학생은 블로그를 통해 아주 상세히 우리 뉴스레터를 소개하기도 했다. 어떤 회사는 뉴스레터에 실린 글이 좋다면서 사내 웹진에 글을 실고 싶다는 연락을 하기도 했다.

이렇게 조금씩 스며들고자 한다. 첫인상은 기억나지 않아도 만날수록 관심이 가고 계속 만나고 싶어지는 사람처럼 내가 어떤 계기로 뉴스레터를 신청했는지 몰라도 매주 목요일 기다려지는 그런.

 

그렇다보니 뉴스레터에 들어갈 콘텐츠를 매주 만드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재밌게 만든 SNS 피드가 빵 뜨면 금방 회자되는 것과 비교하면 힘이 빠지기도 한다.

그런데 우리가 디저트만 먹고 살 수 없듯이 이런 글도 필요하다.

맛있고 자극적인걸 좋아하는 사람도 어느날엔가는 담백하고 건강에도 좋은 가정식 백반이 먹고 싶은 것처럼.

뉴스레터는 최소 3년을 바라보고 시작한 일이다. 그렇게 따지면 아직 갈길이 많다.

초초해하지 말고 조급해하지 말고 당분간은 우리의 브랜드 가치가 담겨있으면서 고객들이 읽고 싶은 콘텐츠를 만드는 것에 집중할 것이다.

이런 우리의 진심과 맞닿은 사람들은 우리를 알아보게 될 것이고, 그들은 우리 회사가 추구하는 가치 그리고 그를 위한 노력들을, 진심을 알아줄 것이라고 믿는다.

 

일하다가 지쳐 마음을 다잡고자 쓴 글이라 넋두리처럼 되어 버렸다.

내가 왜 뉴스레터를 시작했는지 적어놓지 않으면 이리저리 휩쓸리게 될까봐 기록으로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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