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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Career and Family ; 남녀격차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

바쁜 연말 일정으로 인해 한 시즌 쉬었다가 다시 시작한 트레바리.

이번달 책은 '커리어 그리고 가정'. 제목이 왜이래? 싶어 원제를 찾아봤더니 Career and Family. 정직한 번역이다. 

(여성) 사회학자가 남녀 소득 격차의 원인을 파헤치기 위해 지난 120년간의 미국 대졸여성의 커리어 데이터를 분석한 내용에 대해 쓴 글이다.

대상을 대학을 졸업한 시점 기준으로 5개 그룹 나누어 분석하였는데 이런 종류의 연구가 얼마나 힘든지 알기에 이러저러한 아쉬운 점이나 대표성이 있는지에 대한 논란은 차치하고서 이 책의 가장 중요한 점을 뽑자면, 일의 관점에서 바라보았다는 점이다.

 

출처 : 교보문고

 

그동안 남녀 소득격차를 얘기할 때 항사 나오는 여자가 가정을 돌봐야 한다는 사회문화적 인식이나 남자가 수리/논리 또는 육체적으로 우위에 있다는 생물학적 관점처럼 문제의 원인을 인간, 우리 자신에 두고 생각했는데, 이 책은 '일'의 특성, 일의 '시스템'에 대해 얘기한다.

불평등의 시작은 탐욕스러운 일 (greedy work)이라는 것이다.

항상 온콜 상태에 있었야 하는 이런 일들이 가정내 누군가에게는 커리어를 포기하게 만들고 대다수의 경우, 여성이 그 대상이 되면서 결과적으로 남녀의 소득격차가 발생한다는 점이다.

이제까지 우리는 근본원인 보다는 커리어를 포기하는 대상이 왜 여성인가에 대해서만 생각했고, 그에 대한 대책을 만들어왔다.

그래서 출산/육아 휴직을 늘려왔고, 여성 직장인에 대한 기업의 인식을 바꾸기 위해 당근과 채찍을 주었다. 그리고 덕분에 과거보다 훨씬 개선되어 왔다. 일반적인 대기업은 육아휴직에 대해 자유롭고, 임신한 직원에 대해서는 근무시간을 줄여주고 검진을 위한 유급 휴가도 제공하고 있다.  누군가는 역차별이라고 생각하는 여성임원이나 이사회 위원 비율도 강제화하는 분위기다. 또한 관습적으로 인식되던 특정 보직에 대한 성인식도 많이 개선되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누군가는 일과 가정을 모두 돌보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이들이 대부분 여성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 이슈를 성평등의 관점에서만 생각했다.

그러나 사회적인 인식을 배제하고 본다면, 커리어를 더 중시하냐 가정을 더 중시하냐는 성의 차이라기 보다는 개인의 가치관이나 성향이 맞다.

내 주위에도 일보다는 가정에 집중하고 싶은 남자들이 많지만, 사회적 시선으로 인해 가정에 더 시간을 할애하거나 혹은 일을 포기하고 가정을 돌보는데 올인하지 못한다. 이런 인식은 그런 사람들이 많아지면 자연스럽게 해결된다.

그렇지만 문제는 집안에 아이든 노부모 등 돌봄이 필요한 사람이 있다면, 둘 중 하나는 커리어를 포기해야한다는 점이다.

이는 남녀를 떠나서 불평등이 발생한다.

 

저자는 항상 일에 대해 온콜 상태를 유지해야하는 일 (온콜 노동)을 아래의 6개 특성으로 설명한다

 - 다른 이들과의 접촉 : 해당 업무는 전화, 대면 등으로 다른 이들과 상호 접촉을 하는 것이 얼마나 많이 필요한가?

 - 의사결정의 빈도 : 해당 업무에서 당신의 의사결정이 다른 사람이나 고용주의 이미지, 평판, 재정적 차원에 얼마나 자주 영향을 미치는가?

 - 시간 압박 : 해당 일자리는 노동자가 마감 시간을 엄격하게 맞출 것을 얼마나 자주 요구하는가?

 - 업무 구조화 정도 : 해당 업무는 노동자 입장에서 (업무의 종류, 목적, 우선 순위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기보다) 어느 정도나 사전에 구조화되어 있는가?

 - 인간관계의 형성과 유지 : 일을 하면서 다른 이들과 건설적이고 협업적인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 경쟁 정도 : 해당 일자리는 얼마나 경쟁적인가?

 

현재 우리의 직업을 보면, 위의 항목에 한개도 해당되지 않는 경우는 별로 없는 듯하다. 그렇지만 대체인력 또는 협업 시스템으로 어느정도는 해결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당장은 불편할 수 있다. 그렇지만 장기적으로 옳은 방향이라면 지금의 불편함은 감수하면서 개선 방법을 찾아가는게 맞다.

 

단적으로 출산이나 육아휴직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이제는 법적으로도 출산휴가나 육아휴직을 보장하고 장려하는 분위기다. 지금의 회사도 임산부나 육아 직원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그럼에도 조직 관리 측면에서 마냥 반가워할 수 없는 이유는 대체인력을 지원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부서에 임산부가 2~3명이 있다면 남은 직원들이 그들의 부재지간 동안 일을 부담해야하기에 당연히 도와줘야된다고 생각하지만 한편으로는 부담스러운 것은 사실이다.

 

예전에 잠깐 경험했던 외국계 회사는 단 3개월의 출산휴가 동안 업무를 대행할 직원을 모집해서 다른 직원들의 부담을 최소화하도록 했다. 물론 업무에 대한 숙련도를 고려할 때, 휴직자의 업무를 100% 만족스럽게 대행할 순 없겠지만 회사가 할 수 있는 가장 적극적인 지원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육아와 일을 병행하기 좋은 직업으로 알려진 교사의 경우도 휴직기간동안 업무를 대행해줄 기간제 교사 시스템이 있기에 가능하다는 얘기를 들었다. 최근에는 2명의 교사가 요일을 나눠서 근무해서 각각 0.5인의 역할을 하는 제도도 시범적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들었다.

 

문제의 원인을 사람에 두고 생각하니 막막하던 것이 일로 관점을 바꾸니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떠오른다.

최근 총선을 앞두고 다양한 선심성, 그리고 지극히 단기적인 출산율 정책이 쏟아지고 있다.

표면적인 현상만을 보고 그를 해결하기 위한 아이디어를 내기보다는 문제의 원인을 계속 파고들어야 제대로 된 해결책이 나올 수 있다는걸 정책입안자들이 깨달으면 좋겠다.

 

책의 뒷부분 저자가 제안한 해결책은 힘이 빠지지만, 남녀 소득격차 원인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다는 점만으로도 이 책의 가치는 충분하고, 읽을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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