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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글렌 굴드, 피아노 솔로 ; 피아노와 하나가 되고싶었던 천재 피아니스트의 삶

2월 독서모임의 책을 처음 들었을 때, 너무 생소했다.

글렌 굴드가 사람 이름이라는 것을, 그것도 아주 유명한 피아니스트라는 것을 알게 된 후에 어떻게 한번도 들어보지 못했을까 싶은 민망함이 들었다. 어릴적이지만 나름 7년간 피아노를 배웠었고 성인이 되어서는 가끔 연주회에 가기도 했었는데 (대학교때 잠깐 클래식 음악 동호회에 발을 담그기도 했고), 어떻게 들어본 적도 없을까.

 

출처 : 교보문고

 

실존 인물에 대해 다룬 책이고 두께도 얇야서 설연휴 떄 가볍게 읽을 수 있을거란 예상과 달리, 세밀한 묘사와 음악 지식이 부족하면 이해하기 어려운 글로 인해 1시간을 꼬박 집중하고 읽었음에도 20페이지를 넘기기가 쉽지 않았다.

결국 모임 일자가 다가오면서 완독은 포기하고 참여에 의의를 두기로 했다. 보통은 책을 다 못읽으면 모임에 참석하지 않는데, 이번에는 그의 음악을 함께 듣는다하여 책을 읽는 내내 궁금했던 그의 연주를 들을 거란 기대와 다른 사람들의 책에 대한 소감도 궁금해서 참석했다.

다행히 나처럼 완독을 못한 사람들이 몇명 있어서 안심이 되었다.

그에 대해 몰랐지만 책에서 묘사한 글렌 굴드는 본인이 원하는 연주를 하기 위해서 본인을 고립시켰던 것 같다. 자발적 고립처럼 보이지만 완벽한 연주를 위해 온갖 위험한 것들로부터 자신의 육체를 보호하고,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서 반응을 보이는 관객이나 평론가들로부터 본인의 멘탈을 보호하기 위함으로 느껴졌다.

31세가 되던 해 어찌보면 커리어의 정점에 있을 때, 연주자의 삶을 중단하고 녹음 활동으로만 대중들과 소통했다.

책을 읽는 내내 완벽에의 집착이랄까? 피아노, 아니 음악과 하나가 되고자 했던 이루어질 수 없는 모든 에너지를 던져을 50세라는 젊은 나이에 생명의 에너지를 모두 소진하고 죽음에 이르는 그의 삶이 안타깝기도 하면서 아름답게 느껴졌다.

그렇게 하나에 온전히 삶을 던질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책에 관한 얘기중에도 가장 많이 나눴던 것은 그의 자발적 고립에 대한 것이었다. 완벽한 음악을 위해 그처럼 온전한 고립을 택하지는 못하더라도 대부분은 혼자만의 시간, 고독의 시간이 필요하다는데 공감했다.

그리고 캠핑, 등산, 명상, 글쓰기 또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집이나 카페 같은 곳에서 고독의 시간을 갖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사회적 동물이기에 오히려 그런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나 또한 그다지 외로움을 타지 않는 성격이긴 하지만 주말에 혼자 오롯이 있을 때 안정감이 든다.

게다가 약속이나 해야할 일이 없는 날에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는 등 내가 좋아하는 걸 하면서 시간을 보낼때는 굉장히 충만한 마음이 들면서 이런게 행복이지 않을까...싶은 기분이 든다.

그래서 오히려 많지 않은 (자발적으로) 사람들과의 (특히, 이해관계가 없고 공통의 관심사가 있는) 대화가 행복한 것 같다.

 

지난달부터 모임 사람들이 내가 이전보다 편안해 보인다는 말을 한다.

연말에 하와이로 여행다녀온 이후라고 말을 하는데...사실 나의 컨디션을 가장 많이 좌우하는 회사일은 작년과 올해 크게 달라진게 없다.

오히려 올해가 더 상황이 안좋고...스스로도 갈등이 많다. 성과를 내는 리더와 좋은 리더 (팀원이 좋아하는 리더) 사이에서 나는 명확하게 성과를 내는 리더를 택했고, 그 방향으로 팀을 이끌었는데 종종 허무함이 느껴질 때가 많다.

회사의 메인 업무가 아니고 영업이나 자산운용처럼 정량적인 성과가 바로 드러나는게 아니다보니 성과는 별로 인정받지 못하고 팀원들은 힘들어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게 다 팀과 나아가 그들을 위한 것인데 현명하게 조율하지 못하는것 같다.

나도 내가 굉장히 포용력있고 다정한 리더가 아니라는 건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최대한 스트레스를 주지 않기 위해서 업무 외에는 신경을 쓰게 만드는 일을 안하려고 최대한 노력했고, 그렇게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팀원들의 업무 스트레스는 큰 것 같고, 나는 여전히 그들의 열정과 성과에 아쉬움이 많다.

만날 수 없는 평행선처럼 느껴지다보니, 내가 너무 지친다.

뭘 위해서 업무시간외, 주말에도 업무를, 팀원들의 자기계발을 신경쓰느라 나의 사생활을 포기하나 싶은 마음.

하루에도 수십번씩 팀장이라는 직함을 내려놓을까 갈등하고 있는데, 모임 사람들에게 편안해보인다는 말을 들으니 어색하다.

내 생각에는 2년정도 지나면서 낯가림이 줄어들어서인게 아닐까 싶다.

극도의 I, 내향형이라서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는 나도 모르게 경직되고 그런 모습이 불편하게 비춰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2년 정도 지나면서 사람들과 익숙해지다보니 찐친끼리 나오는 농담이나 유머가 나도 모르게 나오는 것 같다.

독서모임이지만 와인을 마시면서 진행하기에 최근 더 알코올에 취약해지면서 지난 2년 동안 모임에 계속 나갈까 그만둘까를 고민하며 지내왔는데...이제는 조금 편해진 것 같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다양한 직업과 배경과 나이와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곳은 흔치 않으니깐.

건강관리 잘 해서 한달에 한두번 정도는 술을 마시며 사람들과 어울리는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겠다.

 

참, 이야기가 다른곳으로 샜는데, 내가 너무 기대했던 글렌 굴드의 피아노 연주는...뭐랄까 

군더더기 하나 없이 깔끔한, 어린아이가 치는 것 같은 너무나 정직한 연주라서 놀랐다.

워낙 화려하고 기교가 뛰어난 연주자들이 많고 그들의 연주를 들었던 탓에, 처음에는 어색하기도 했지만 들을 수록 질리지 않는...마치 인공 조미료가 하나도 들어가지 않아 처음에는 다소 슴슴하지만 먹을수록 재료 본연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음식처럼 오로지 피아노와 피아노를 연주하는 글렌 굴드의 텐션, 호흡, 리듬만 있고 그 외에는 오직 공기만 있는 듯한 느낌이다.

 

여러 소음속에서 살다가 글렌 굴드의 깨끗한 연주를 들으니 몸이 정화되는 느낌이다.

비워야 제대로 채울 수 있듯이 글렌 굴드는 고립을 통해 완벽한 음을 만들어낸 듯하다.

 

나도 가끔은 보다 적극적으로 고립,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야겠다.

그러면서 나도 모르게 끊임없이 채워넣은 정보들을 흘려보내면서 더 좋은 에너지, 정보를 채울 수 있도록 비우는 시간을 만들어야지

이제는 조금 더 나를 위해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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