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회사 생활에 너무 치여서 좀 쉬고 싶다 생각할즈음...
부서원들이 휴일 있으면 전후로 휴가를 다 쓰다보니 나라도 남아서 급한일을 처리해야겠다는 생각에 휴가를 못내고 망설이는 나를 발견하고 일정표를 살펴 가장 급한 일이 없을 듯한 날짜를 골라 휴가를 잡아뒀다. 그게 5/13, 14.
엄마한테 자주 못가는 탓에 이때 주말에 붙여 멀지 않은 곳에 여행이라고 갈 생각이었다.
공교롭게도 그 즈음 부여 여행을 다녀온 주변 사람이 몇몇 있었고, 한명이 부모님을 모시고 부여 롯데 리조트를 다녀왔다는 얘기를 듣고 바로 예약을 했다.
엄마 집에서 너무 멀지 않고 번잡하지 않고 조용하게 쉴 수 있는 곳. 적당해 보였다. 그리고 나는 한번도 부여에 다녀온 적이 없었다.
경주는 가끔 가면서 왜 백제문화 유산이 가득한 부여에는 가볼 생각을 안 했을까.
그렇게 숙소를 예약하고는 4월, 5월 회사 업무가 너무 많아서 휴가에 대해 생각해볼 시간이 없었다.
특히 지난주는 부서원들 휴가도 많은데 진행되는 프로젝트와 보고도 많아서 휴가를 취소할까 망설였지만...이러다보면 엄마와 시간을 보낼 시간은 점점 없어지겠다 싶어, 휴가 중 시간을 내어 몇시간 일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지만 휴가는 취소하지 않고 대신 업무용 PC를 가지고 가기로 결정했다.
토요일은 소소한 집수리를 하느라 일하시는 분들이 4시간 정도 방문했는데, 그 시간을 빌어 열심히 부여의 맛집을 검색했다. 미리 다녀온 지인분들이 추천해준 곳도 다시 검토하고.
종일 내리던 비가 저녁부터 강한 바람을 동반해서 창문이 흔들릴 정도라서 많이 걱정했는데 다행히 오늘 아침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너무나 파란 하늘과 청량한 날씨가 되었다.
원래는 엄마 집에 가서 엄마를 모시고 다시 부여를 갈 계획이었는데, 오빠가 시간이 되서 오빠가 모시고 오고 대신 나는 서울에서 버스를 타고 갔다. (운전은 아무리 해도 익숙해지지 않고 피곤하기만 하다 ㅠ 그 시간에 다른걸 할 수도 없고)
서울에서 약 2시간. 신기하게 중간에 휴게소에서 10분 정도 정차하니 비로소 여행을 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2시쯤 리조트에 도착했다. 일요일 오후라 리조트도 한산한 분위기였다. 골프장을 끼고 있고 바로 앞에 롯데 아울렛도 있고 백제문화유적지도 있어서 꽤 넓어보였다. 체크인 시간까지 1시간 정도 남았고, 엄마랑 오빠도 그때쯤 도착 예정이라서 답사겸 롯데 아울렛에 다녀왔다.
언제부턴가 한산하고 차분한 소도시의 느낌이 좋아졌다.
일요일 오후의 여유로운 리조트의 모습도 좋다.
날씨도 완연한 봄날씨, 햇빛을 받으면 덥고 그늘은 기분좋은 시원함. 하늘은 너무도 이쁜 파란색. 5월의 청명함 그 자체다.
숙소 뷰는 저 멀리 골프장이 보여서 온통 초록이다.
숙소에 짐을 풀고 잠깐 쉬는데, 초록초록한 숲을 바라보는 것만해도 기분이 좋아졌다.
서울에서 겨우 2시간인데 왜 이제까지 이곳에 올 생각을 못했을까 아쉬웠지만..이내 앞으로라도 자주 와야겠다는, 이런 시간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엄마랑 언니랑 여행한 적은 가끔 있었는데, 성인이 된 후에 오빠랑 여행온 적은 가족여행을 제외하고는 없었다.
원래 오빠한테는 엄마만 모셔다 달라고 부탁하려고 했다가 시간을 낼 수 있으면 같이 있자고 했는데 다행히 그럴 수 있어서 얼떨결에 엄마와 남매 여행이 된 것이다.
신선한 조합이라서 이또한 잘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럴 기회가 앞으로도 거의 없을테니
숙소에서 좀 쉬다가 미리 계획해놓은 일정을 따라 삼정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시골통닭에서 통락과 모래집튀김을 포장하고 하나로마트에서 맥주와 음료 간단한 간식을 사와서 오랜만에 오빠와 맥주를 마셨다.
일요일 저녁에 엄마, 오빠, 나 이렇게 셋이 있다니 약간 어색하면서도 재밌다.
운전하느라 피곤했는지 오빠는 평소보다 일찍 잠에 들고 나는 오늘을 기록으로 남겨야겠다는 생각에 블로그를 열었다.
사실 2박3일간 어디서 무엇을 먹을지만 고민했지 무엇을 할지는 생각하지 않아서 내일은 오빠가 하고 싶다는걸 할 생각이다.
그냥 숙소 근처를 산책하거나 정림사지와 같은 대표 유적지를 보거나 국립박물관에 가볼까 생각중이다.
2~3시간 정도는 회사 업무를 처리하느라 숙소에서 일을 해야해서 일정을 잘 짜야 한다.
그래도 휴가와서 회사 일을 해야해서 짜증이 나기 보다는 이렇게라도 올 수 있게 되서 다행이다,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은 이틀 알차게 잘 보내다 가야지
Day2
원래는 한두군데 둘러보고 숙소에서 주변 경치나 즐기며 쉴 생각이었는데, 오빠의 합류로 여행이 관광 모드로 바뀌었다.
아침은 가볍게 차와 사과로 때우고 9시에 숙소를 나서서 궁남지 - 정림사지 5층석탑 - 점심 (광명식당) - 무량사를 둘러보고 숙소에서 쉬고 급한 회사일도 하면서 3시간 머물다 검색해서 찾은 한옥카페 합송리 994에서 커피마시며 얘기하다가 엄마가 좋아하는 장어로 저녁을 먹고 숙소에 돌아와 맥주 마시며 TV 보다가 11시쯤 잠들며 긴 하루를 마무리
Day3
11시 체크아웃시간에 맞춰 느긋하게 아침 시간을 즐김. 이틀 동안 너무 많이 먹은 것에 대한 죄책감에 7시에 일어나 가볍게 숙소 근처 러닝.
전날 사놓은 빵과 사과, 커피로 천천히 아침을 먹고 정리하고 체크 아웃.
부여 1경이라는 낙화암을 보러 출발. 부소산성에서 낙화암 가는 길이 너무 좋았다. 초록의 나무가 우거지고 경사도 완만해서 엄마가 걷기에도 무리가 없었다. 30분 정도 걸어서 낙화암에 도착, 꽤 시끄러웠는데 12시쯤 단체 관광객들이 빠지니 다시 조용해졌다. 온 김에 배도 타자는 오빠의 제안에 선착장으로 가는 길에 고란사에 들러 마시면 3년은 젊어진다는 약수도 마시고, 10분 정도 배를 타고 다시 출발지였던 부소산성쪽에 도착. 근처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소화도 시킬 겸 부여왕릉을 보러갔다. 넓은 언덕에 무덤들이 모여있는걸 보니 경주가 생각났다.
우리 외에는 사람이 거의 없어서 천천히 안내판을 읽으면서 왕릉을 산책하고, 발굴이 진행되는 무덤도 잠시 구경하고 왕릉 내 뮤지엄도 둘러보면서 학교 때 배웠으나 거의 기억하지 못하는 백제의 역사도 다시 되새겼다.
날씨가 너무 좋은데 왕릉에는 그늘이 거의 없어서 더위에 약간 지치는 느낌이라 카페로 향했다.
4시30분 서울행 시외버스를 예약해서 근처 카페에서 시원한 음료를 마시며 여행을 마무리하고 나는 서울로, 엄마와 오빠는 청주로.
이번 여행은 날씨와 갑자가 합류한 오빠 덕에 완벽했던 것 같다.
게다가 일-월-화 일정으로 관광객이 많이 않아서 한가로워서 좋았고, 부여라는 곳 자체가 소박하고 조용하고 아담한 곳이라서 여러 곳을 다녔음에도 많이 피곤하지 않았다.
출발 전날 토요일에는 종일 비가 내리고 저녁에는 비바람도 심했는데, 일요일부터 화요일까지는 그야말로 청명한 봄 날씨 그 자체였다. 햇살은 눈부시고 바람은 시원해서 조금 덥다 싶다가도 그늘에 가면 상쾌하게 시원한 1년에 몇일 없는 환상적인 날씨였다.
여행에서 돌아온 다음날인 오늘 5/15일은 다시 오후부터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고 있다. 5일 연휴 중 우리가 여행을 간 3일만 맑았다.
날씨도 엄마와의 여행을 응원하는 느낌이다.
다시 내일부터 5월말까지는 일이 몰아치고 여러가지 업무 행사도 겹쳐서 정신없게 흘러가겠지만, 이번 여행에서 얻은 에너지와 충만함으로 잘 넘길 수 있을 것 같다.
아무 탈없이 그리고 너무 즐겁게 잘 다녀와서 다행이다. 그리고 감사하다. 진심으로.
그동안 고생했다고 좋은 추억을 만들 시간을 선물받은 느낌이라, 이번 여행을 함께 해준 엄마와 오빠, 그리고 가능하게 해준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하다.
이번 여행이 좋아서 부여는 언젠가 다시 가보고 싶다. 그때는 이번에 못갔던 부여국립박물관에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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