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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마중가는 길 by 서동욱 (전람회)

어수선했던 12월초의 변화의 고비를 힘겹게 넘기면서 새 업무에 적응하려고 노력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이제 새로운 챕터로 접어든 삶을 즐기려고 노력하면서 그동안 놓쳤던 모임에 참여하러 가던 금요일 저녁에 무심코 열어본 SNS에서 전람회 서동욱님의 사망 소식을 접했다.

 

전람회. 서울로 대학와서 처음으로 갔던 윤종신의 소극장 콘서트에서 게스트로 나왔던 전람회를 본게 처음이었다.

그당시의 청춘들에겐 삶이나 다름 없었던 전람회의 노래들.

김동률의 매력적인 저음과 화려한 노래실력도 물론 좋았지만 옆에서 조용히 베이스를 치는 서동욱에게 눈길이 갔다.

나는 가창력이 어마어마하게 뛰어난 가수보다는 조금은 서툰 가수들을 좋아한다... 윤상, 노리플라이, 페퍼톤스 그리고 서동욱.  그래서 전람회 앨범 중 유일한 서동욱의 곡인 '마중가는 길'을 좋아한다. 떨리는 목소리로 정직하게 부르는 그의 노래가 마음에 깊이 와닿는다.

약 3~4년간의 활동 후 김동률은 솔로로, 서동욱은 학업에 매진하기 위해 전람회는 졸업을 했고,

이후 김동률 팬인 친구 따라 콘서트를 몇번 갔었더랬다.

언젠가 콘서트에선 김동률이 관객석에 앉아있는 서동욱에 대한 멘트를 해서 자리에 일어나 인사를 했었다.

같이 활동했던 친구를 계속 응원해주는 모습이 아름답다 생각했었다.

보통 듀엣으로 활동하다보면 보컬에 집중적으로 관심이 가다보니 좋지 않은 모습으로 해체되는 경우가 있는데,

전람회도 표면적으로는 비슷할 수 있겠지만 서동욱은 학업을 이어나가면서 이후 김동율 못지 않은 화려한 커리어를 보여주었다. 미국 MBA를 마치고 맥킨지에서 컨설턴트로 일한다는 얘기를 들어서 대학 내내 음악활동 하느라 공부도 제대로 못했을텐데 참 대단하다 싶었고, 언젠가는 두산에 상무로 스카웃되었다는 소식에 진짜 능력자라고 생각했다.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음에도 부럽고 그의 재능에 조금은 질투가 나기도 했다.

얼마나 멋진 인생인가. 절친과 같은 학교에 진학해서 대학가요제에 나가고 거기서 대상을 받으며 화려하게 데뷔해 3~4년간 음악활동을 하다가 다시 학업에 복귀해 음악활동에 버금가는 화려한 커리어를 쌓으며 일을 하고 있으니.

가끔 신은 누군가에게는 다양한 재능을 넘치게 준다는 생각이 들 떄가 있다. 노래를 잘 만들고 부르면서 글까지 잘 쓰는 이적, 연기도 잘하면서 역시 글도 잘 쓰는 박정민 배우를 보며 저런 삶을 사는것은 어떤 기분일까...쓸데없는 상상을 한적이 있다.

친구이자 과거 동료인 김동율의 공연을 보러운 서동욱을 보면서, 60쯤 되어 서동욱이 은퇴하면 전람회의 재결합을 기대해봐도 될까?  재결합까지는 아니더라도 무대에 같이 선 둘의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는데..이제는 그럴 수 없게 되었다.

 

오랜만의 모임에 참석해서 반갑고 또 즐겁게 웃고 떠들었지만 중간중간 서둥욱님이 떠올랐다.

병이 아니었다면 그도 지금쯤 친구나 동료, 가족들과 함께 가는 금요일 저녁을 보내고 있지 않았을까.

50세. 평균수명이 100세라고 치면 이제 고작 반인데...너무 빨리 떠나버려 슬프다. 

슬프다라는 말로는 충분하지 않은데..적당한 표현을 찾을 수 없다.

50이란 숫자가 주는 다양한 관점들이 충돌하면서 머리가 혼란스럽다.

8,90년대와 같은 고속성장이 멈춘 기업에서는 50은 이제 후배들에게 자리를 물려줄 나이이다.

50은 넘어야 리더가 되고 임원이 될 준비가 되었다는 인식은 불과 4~5년만에 180도 바뀌어 50은 빠르게 변하는 세상을 이해하지 못하는 꼰대로 바뀌었고 이들은 MZ에게 밀려나고 있다.

그러다보니 나도 50은 무언가 새로운 도전을 하기는 어려운, 그렇다고 직업적인 면에서나 개인적인 측면에서도 성공을 기대하기 어려운 나이라는 인식이 있었는데... 서동욱의 사망소식을 듣고 가장 처음 든 생각은 죽기엔 '너무 젊다' 였다.

 

모임이 끝나고 집에 가는데 추적추적 눈이 비처럼 내렸다.

너무 일찍 삶을 마감한 서동욱에 대한 사람들의 마음 같았다.

그러면서 이 시간이 너무나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론 좌절하고 속상하고 배신감에 분노할 때도 있지만 창문에 비친 햇살에, 일어나 마시는 따뜻한 차 한잔에, 책을 읽으며 기억하고 싶은 문장을 발견하고 밑줄을 그을 때처럼 행복하다고 느끼는 순간도 많다.

그냥 이렇게 살아있음에 그래서 기쁨, 슬픔, 화, 질투, 뿌듯함 등 다양한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할 따름이다.

 

나의 20대에 큰 위로가 되었던 전람회의 음악, 거기에 한 자리를 차지해주었던 서동욱님, 하늘에 가서 여기서 못다한 것들 하면서 평안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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