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목요일 저녁, 잠자리에 들면서 명상 콘텐츠를 틀으려고 유튜브를 켰는데,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 썸네일의 뉴스 속보 눈에 들어왔다.
어? 어제그제 노벨 물리학상, 노벨 화학상을 AI 관련 연구자들이 선정되었다는 뉴스를 봤는데, 정말일까? 아니면 가짜 뉴스인가?
영상이 시작되는 그 짧은 몇 초 동안 많은 생각이 들었다. 몇년 전 고은 작가, 황석영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 기대에 대한 설레발이 불발되었던 적은 있었으나, 요근래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 기대에 대한 어떤 소식도 듣지 못했기에 의심이 들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 의심은 멋지게 무너졌다. 그 어떤 언론에서도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 기대에 대한 언급이 없었기에 그녀의 수상은 그야말로 서프라이즈였다. 한글이라는 소수언어로 쓰인 문학이 세계인을 설득하고 공감을 얻어냈다니 그냥 그 언어를 쓰는 나라에 사는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말할 수 없는 뿌듯함이 밀려왔다.
나의 첫 한강 작가의 글은 '채식주의자'였다. 소설은 몇몇 작가의 작품을 제외하고는 잘 안 읽는 편이었는데, 몇년 전 포틀랜드 여행 중 방문한 파웰북스에서 우연히 '채식주의자' 영문판을 보고 신기하고 반가웠던 마음에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읽었었다. 가볍게 읽을 수 있는게 아니었지만 묘하게 공감되면서 독특한 스토리와 단순한 문체가 인상적이었다. 이후 '흰'을 독서모임에서 읽고, 이어 '소년이 온다'를 읽다 마음이 힘들어 중단했더랬다.
잠을 미룬채 관련 기사들을 읽고 있는데 활동중인 독서모임 2개의 단톡방들에 흥분과 기쁨으로 대화가 쏟아졌다. 이미 그녀의 책으로 모임을 진행했던 독서모임은 그녀의 책에서 인상깊었던 구절을 공유했고, 주로 경제/사회 관련 책을 다루는 독서모임은 연말 특집으로 그녀의 책을 선정하다는 의견들이 오고갔다. 다들 진심으로 기뻐하고 자랑스러워했다.
아직 그 여운이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금요일 출근했지만 종일 업무를 하느라 잊고 있었고, 점심시간에도 요즘 인기있는 OTT 프로그램 얘기, 운동 얘기, 계획중인 브랜드 캠페인 얘기 등 다양한 얘기들이 오고갔지만 한강 작가 이야기는 없었다. 그렇게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고 퇴근길에 다시 독서모임 단톡방을 확인하니 여전히 한강작가의 노벨문학상을 얘기하는 대화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하루동안 쌓인 단톡방의 글들을 읽어내려가면서 문득 '행복하다'는 감정이 떠올랐다. 매일 안좋은 뉴스만 가득한 세상에서 나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사람의 좋은 소식을 듣고 사람들과 마음껏 기뻐하고 축하하고 그의 작품들의 인상적인 문구를 떠올리며 감상을 얘기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게 감사하다는 생각.
빡빡한 하루를 보내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이런 소소한 것들이 살아가는 기쁨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월급이 오르지도 않았고, 보유한 주식이 오른것도 아니지만 순수하게 남의 경사를 좋아하고 축하해줄 수 있는 마음, 그런 여유를 가질 수 있다는 것에 기분이 좋아졌다.
집에 오자마자 책장을 뒤져 한강작가의 '흰'을 꺼내들어 이번주말에 천천히 문장하나하나 곱씹으며 읽어야겠다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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