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위대한 갯츠비'를 접한건 대학생 시절, 하루키에 낚여서였다.
한창 하루키의 수필에 빠졌던 시절 서점을 둘러보다 발견한 책 표지에 젉힌 ''위대한 갯츠비'를 3번 읽은 사람이면 나와 친구가 될 수 있다' - 무라카미 하루키'. 를 보고 덥석 구매해서 읽게 된 책.
그러나 책을 읽는 내내 왜 이 책이 극찬을 받는걸까 의문이 들었었다.
한동안 위대한 갯츠비는 내가 좋은 문학작품을 식별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사실을 떠올리는..약간의 좌절감을 맛보게한 책으로 기억되었다.
그러다 한 10년 후쯤, 책장을 정리하다가 위대한 갯츠비를 발견하고 다시 읽게 되었다.
시간이 흐른 탓인지, 처음 접했을 때와 기대가 달랐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마치 처음 읽는 것처럼 첫장부터 빠져들었고, 개츠비에 이입되어 좌절하고 분노하고 가슴아파했다. 조금은 하루키의 말이 이해될 것 같았다.
나는 그처럼 무언가를 위해 인생을 다 던질 수 있을까, 누군가를 이렇게 사랑할 수 있을까, 돌아오지 않을 데이지를 기다리는 그의 마음은 어떨까...수많은 질문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다시 오랜만에 독서모임을 위해 세번째 읽게된 '위대한 갯츠비'.
책을 2번 읽었고 예전에 영화도 보았던터라 다시 읽지 않아도 괜찮겠지 싶었는데, 모임 발제문을 읽고 가물거리는 기억에 먼지묻은 책을 다시 꺼내들었다.
그리고 이번에 눈에 들어온건 유려한 문체. 단순히 묘사가 생생하고 표현이 아름답다는 말로는 부족한...간결하지만 충분히 눈에 그려지게 묘사적인 그러면서도 전형적이지 않고 약간의 킥이 들어간 세련된 표현에 마음을 뺐겼다.
스토리를 알고 읽으니 문장 하나하나가 눈에 들어오면서 작가의 표현력에 감탄을 하게 되었다.
목소리, 앉아있는 자세, 집안의 모습 모든 것들이 내 머릿속에 선명하게 그려지고 단순히 외형적인 모습뿐 아니라 심리까지 보이는 듯하다.
특히, 닉 캐러웨이가 갯츠비를 회상하며 그를 묘사한 문장에 있는 희망에 대한 예민한 감수성 - 희망에 대한 탁월한 재능, 낭만적인 민감성 - 이라는 구절이 머리에 계속 남았다. 이 문구를 읽으면서 왜 개츠비가 그토록 데이지에게 집착했는지, 매력적이고 좋은 배경을 가졌지고 그에겐 잊을 수 없는 사랑이었겠지만 막대한 부를 이룬 현재의 개츠비는 얼마든지 데이지와 같은 여자를 만날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오직 한사람 데이지만을 원했던 건 단지 데이지라는 한 사람이라기 보다는 그녀가 상징하는 것 - 상류사회를 상징하는 부와 배경 - 을 추구했다고 생각한다. 별볼일 없는 집안에서 태어나 철저하게 자기계발을 노력한 갯츠비가 원했던 부와 상류사회의 삶을 데이지를 통해서 선명하게 볼 수 있었기에 데이지에게 집착했다고 것이 아닐까. 희망이라는 단어를 구체화하는 능력 '희망에 대한 탁월한 재능'이고 그가 바라는 희망이 부와 권력이라는 단어로 표현된다면 평범했을 그의 인생이 데이지라는 여인을 통해 낭만적인 민감성을 더했기에 달라보였다.
어쩌면 그는 그 희망에 대한 낭만적인 민감성으로 인해 그 기간을 견뎌왔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그는 데이지는 얻지 못했지만 그녀가 상징하는 부와 절반의 명예는 (물론 그의 장례식에 아무도 오지 않은 것을 보면 살아있을 때 한정적이었던 것이었지만) 얻었다. 그럼에도 그가 최종적인 목표 혹은 가치라고 여겼던 데이지를 얻지못함에 분노와 미련을 가진채 쓸쓸한 죽음을 맞이한다.
그가 파티를 즐기던 여름 내내 한번도 들어가지 않았던 수영장에, 이제는 낙엽이 떨어진 그곳에서 뒤늦게 몸을 담갔다가 허무하게 죽는 것을 보면서 수영장이 그가 아무리 노력해도 진정으로 몸담을 수 없었던 상류사회를 의미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는 왜 갯츠비에게 '위대한 great'란 수식어를 붙였을까.
솔직히 말하면 여전히 충분히 공감은 안된다. 현실이 어떻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멀리 초록 불빛을 바라보며 인생을 던진 모습을 위대하다고 생각한걸까? 내가 그곳에 다다를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지만 일단 시도하고 죽을 힘을 다해 노력하는 모습만을 놓고 보면 위대하다고 볼 수 있겠다.
모임에서는 '위대하다'는 것이 일종의 풍자나 반어법일 수도 있겠다는 의견이 있었는데, 그럴수도 있겠다 싶다.
우리가 쫓는 것들이 어쩌면 그럴만한 가치가 없는 것일 수 있겠다는, 그렇기에 그렇게 앞뒤 가리지 않고 달려가는 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보며 반어적으로 표현한 것일 수도.
요즘 회사일이 너무 바빠서 개인 생활이 거의 없다보니 이렇게 사는게 맞나 싶은 생각이 많이 들었는데 책을 읽으면서 여러 생각들이 떠올랐다. 그저 매일매일 당면한 업무를 고민하고 처리하면서 살아가다보니 내가 원하는 삶, 일을 떠난 나의 삶에 대해 생각해볼 여유가 없었는데 그러다 어느날 갯츠비처럼 목표를 잃고 휘청거릴 수 있겠다 싶은 불안감이 더해졌다.
지금의 나이에 새로운 도전이나 변화는 위험하다고, 무리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어쩌면 이렇게 생각없이 하루하루를 챗바퀴처럼 보내는 일상이 더 위험한게 아닐지..
그 끝에 무엇이 있든 목표를 정하고 그를 위해 조금씩이라도 나아가는 삶, 그 과정 자체가 의미이자 행복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So we beat on, boats against the current, borne back ceaselessly into the past"
그리하여 조류는 거스르는 배처럼 끊임없이 과거로 떠밀려 가면서도 앞으로 앞으로 계속 나아가는 것이다.
하루키에 낚였다 결국 3번 읽은 위대한 갯츠비.
이제야 하루키와 친구가 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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