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모임 책으로 선정되이 읽기 시작한 책 ' 숨결이 바람될때'.
미국에서 베스트셀러로 유명헀던거라 국내 출간 당시에도 언론에 많이 회자되었던 걸로 기억한다.
의사인 저자가 암에 걸려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직접 쓴 얘기라는 건 알고 있었는데 좋은 리뷰와 평점에도 왠지 손이 가지 않았다. 아마 죽음은 나와 관련이 깊은 주제가 아니라는 생각에 관심이 없었던게 아닐까.
당시 나는 어떻게 하면 내가 하는 일을 더 잘하고 인정받을 수 있을까..와 같은 커리어적인 목표에 관심이 높아 자기계발이나 경제, 경영, 마케팅, 브랜딩 관련 책들을 읽기에도 시간이 빠듯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놓쳐버린 책을 신년 초 독서모임으로 인해 2주전부터 읽기 시작했다.
출간 이후 꽤 시간이 흘렀고, 삶의 가치관이나 관심사에도 조금의 변화가 있긴하지만 죽음이라는 주제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깊지는 않았다.
그래서 멀리 이동중에 오디오북으로 들으면서 반쯤 읽은 후에 나머지 반을 계속 미루고 있던 참이었다.
그러다가 오늘 아침 무안 공항의 비행기 사고에 대한 뉴스를 보고 있자니 연말을 맞아 친구나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 위해, 혹은 낯선 곳에서 조용히 한해를 돌아보기 위해 여행을 떠났던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했다는 사실이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게다가 어제는 집에서 책을 읽다가 갑자기 내년 5월과 10월 항공편을 아무 계획없이 예약했었더랬다.
25년 유독 긴 연휴에 맞춰서 사람들이 항공권을 미리 예약했다는 뉴스를 들었을 때도, 친구가 근속 휴가 합쳐서 내년 휴가 계획을 구체적으로 세워놨다는 얘기를 들으면서도 여행 계획을 세울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없었는데 그냥 갑자기 한시간도 안되서 항공편을 예약한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사고 소식을 들으니 죽음이라는 것이 언제든 우리에게 닥칠 수 있다는 현실이 자각된 것이다.
종일 뉴스를 지켜보다가 문득 마무리 짓지 못한 이 책이 떠올랐다.
죽음이라는 것을 가까이 느껴서 그런지 저자인 폴이 본격적으로 암 치료에 들어가는 부분부터 읽기 시작해 순식간에 마지막장까지 끝냈다.
무엇보다 그가 치료를 하면서 겪은 정체성에 대한 고민과 한편으로는 그가 겪였을 육체적인 피로감과 고통에 대해 깊이 공감이 갔다.
감히 암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나도 최근 몇년간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어지면서 일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었다.
새로운 일을 추진하고 사람들을 설득하고 리드하기 위해서는 많은 에너지와 시간이 필요한데 내 체력이 뒷받침 되지 못해서 좌절감을 느낀적이 많다.
퇴근 후 집에 돌아오면 아무것도 하지 못한채 침대에 쓰러져 자고 (그 순간이 제일 행복하다고 느낀적이 많다), 주말에는 부족한 잠을 자느라 어렵게 세운 계획이나 약속을 못지킨 적이 많았다.
자도 자도 끝없이 졸리거나 감기라도 걸리면 누가 땅으로 나를 자꾸 잡아 끌어내리는 듯한 느낌에 몸이 물먹은 솜처럼 무겁게 느껴졌다.
점심을 건너뛰고 자동차에서 쪽잠을 자거나 감기에 걸렸을 때는 점심시간에 근처 병원을 찾아 수액을 많으며 오후에 계속 일할 수 있도록 기력을 보충해야했다.
그러면서 종종 나는 왜 이렇게까지 일할까...라는 생각해본적이 많은데 결론은 내가 일을 좋아한다는 것과 내가 좋아하는 일에서 인정을 받고 싶다는 걸로 귀결되었다. 첫번째는 어느정도 나의 의지만 있다면 할 수 있지만 두번째는 내맘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다보니 좌절을 느끼기도 하고, 그에 대한 욕망으로 나를 더 몰아세웠던 것 같다.
그것은 나를 더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나를 피폐하게 만들기도 했다.
모든 에너지를 끌어모아 일하는데 다 쏟아부었으니 다른 생활이 제대로 되었을리가 없다.
체력을 키우기 위해 작년부터는 거의 체육인과 같은 일주일 내내 이어지는 운동 프로그램을 수행하지만 몸이 버텨내지 못해 자주 아팠다. PT선생님이 너무 무리한다고 일주일깐 운동을 쉬라고 한적도 있다.
두세달에 한번씩 크게 감기가 걸려서 2~3주씩 고생하고 다시 체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운동하고..이제 정상 컨디션으로 돌아왔으니 본격적으로 운동을 하다가 한달은 넘기지 못하고 또 아프게 되는 반복이었다.
죽음을 직면하게 되면 나는 과연 남은 시간을 무엇을 하면서 시간을 보낼까?
무엇을 가장 아쉬워할까...당장 잘 떠오르지 않는다.
오늘 아침에도 내년 계획을 세우면서 내가 처한 이런저런 상황들을 아쉬워하고 있었는데 그럴 시간에 차라리 잠깐 풀린 날씨를 만끽하며 동네 산책을 하고 아늑한 카페에서 따뜻한 차와 맛있는 케잌을 먹을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든다.
책을 읽고나니 미래에 대한 계획과 준비도 필요하지만 그게 내 삶을 내 시간의 대부분을 차지해서는 안될 것 같다.
그보다는 현재의 시간을 깊고 충만하게 즐기고 느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시원한 공기와 파란 하늘, 겨울을 견디고 있는 나무들을 바라보고, 새로 시작한 공연, 문을 연 가게들에 관심을 갖고, 가족이나 지인들의 크고 작은 이벤트를 함께 축하하는 일에 시간을 만들어야겠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한정적일 때, 내가 가장 그리워할 것들은 어찌보면 소소해보일 수 있는 그런 것일 것 같다.
아직도 무안 사고에 대한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사고로 죽음을 맞게된 사람들이 평안히 잠들기를, 그 가족과 친구들이 슬픔을 잘 견뎌내기를 마음 깊이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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