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모스=우주라는 너무 직설적인 책의 제목탓에 항상 천문학에 별 관심없었던 나의 관심사 밖에 있었다.
그러다 어린 조카녀석이 가장 감명깊게 읽은 책이 이거라고 했을 때 쪼금 호기심이 생겼었다. 그럼에도 베고 자기 딱 좋을 정도의 묵직한 두께 떄문에 선뜻 손이 가지 않았는데, 지난 겨울 어느날 갑자기 이 책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주문을 했다.
다른 책처럼 몰아쳐서 읽지 않고, 하루에 조금씩 읽겠노라 다짐했었다 (사실 불면증을 해결할 수 있을까하는 다른 의도도 있었다.)
그렇게 읽기 시작했는데..내가 생각했던 것와 전혀 달랐다.
우주 이야기의 탈을 쓴 인간에 대한 이야기다. 인문학, 철학책에 더 가까운 듯하다.
천문학만 다루는게 아니라 인간, 지구, 그리고 우리 삶을 이야기하기 위한 모든 학문분야가 담겨있었다.
수학, 물리학, 화학부터 진화론, 고고학, 역사, 미래학까지 그야말로 종합선물세트 같았다.
세부적으로 이해가 안되는 부분도 있었지만 크게 문제되지 않았다. 다만 그걸 이해하기 위해 그 분야를 더 공부하고 싶다는 욕구가 커졌을 뿐.
그래서 매 챕터를 읽을 때마다 약간 설레기도 했다. 이번에 어떤 얘기일지.
워낙 여러 분야를 다루는 탓에 떠오르는 다른 작가, 책, 영화도 많았다.
신화와 종교에 대한 얘기에서는 리처드 도킨슨의 이기적 유전자와 만들어진 신이, 핵무기에 대해 얘기하면서 어리석은 인간이 기술을 잘못 사용하여 지구가 파멸에 이를지도 모른다는 우려에서는 최근 AI의 위험성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유발하라리의 넥서스가 떠올랐다.
빛의 속도에 가까울 수록 시간이 느리게 가고 4차원에 대한 부분에서는 인터스텔라의 한 장면과 김초엽 작가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있다면'에 나오는 단편의 한 구절이, 정보 전달방법의 진화에 대해 다루며 도서관을 '기억의 대형 물류창고'라고 낭만적으로 표현한 부분을 읽을 때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가 떠올랐다. (주인공의 직업이 일각수의 두개골을 통해 기억을 읽는 것이다)
이렇게 여러 기억들을 끄집어 내서 연관지어보고 한편으로는 책속의 내용대로 상상을 해보느라 영 속도가 나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만약 내가 초등학교나 중학교 때 이 책을 읽었다면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공부를 찾을 수 있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움도 있었다. 여기서 다룬 학문 분야일 수도 있고, 딱딱한 주제를 이렇게 낭만적이고 말랑말랑하게 풀어낸 작가에 감동해 아주 감성적인 SF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수도..
그리고 가늠하기 어렵고 짐작조차 어려운 우주의 긴 시간을 얘기하다보면 인간이 살다가는 100년이라는 시간이 얼마나 ㅏ짧은지, 우주의 수많은 별들을 고려할 때 지구라는 은하수은하의 나선 한 귀퉁이에 있는 태양계의 행성에서 무수한 생물중의 하나일 뿐인 인간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 존재인지 깨달을 수 있다.
그렇다고 우리의 삶이 소중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 사실을 마음에 담고 산다면 조금은 더 현재에 충실하게, 그리고 사사로운 사건들에 덜 마음이 쓰이지 않을까 싶다.
내가 산 책의 띠지에는 유시민 작가가 무인도에 간다면 들고갈 단 하나의 책이라는 홍보 문구가 적혀있었다.
굳이 이책을? 이라는 생각이었는데, 책을 다 읽어갈때쯤 공감하게 되었다.
이 책 하나면 어디에 가든 심심할리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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