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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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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one of Interest ; 악의 평범성을 이렇게 냉정하고 한편으로는 격렬하게 표현할 수 있는 콘텐츠가 또 나올 수 있을까?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읽었을 때는 그저 놀라웠다.유대인 학살을 일으킨 사람이 너무 평범한 사람이었고, 그에 대한 죄책감도 별로 없다는 사실이.그동안 홀로코스트 영화는 수용소에서의 참상을 적나라하게 묘사해서 그들의 고통에 힘들어하고 악행을 저지를 대상에게 분노케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그런데 이 영화는 전혀 다른 문법을 사용한다.담장 넘어 수용소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소리들로만 간간히 상황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대신 담장 안쪽 수용소 소령의 집과 가족의 너무나 평온한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혼란이  빠트린다.이런 사람들이 - 가정을 중시하고 집을 가꾸고 웃고 떠들며 행복하게 살아가는 - 그런 끔찍한 짓을 저지르다니.아니, 담장 반대편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알면서도 그렇게 살아갈 수 있..
라틴어 수업 ; 좋은 어른이 건네는 따뜻한 조언 독서모임을 통해 알게된 책, 라틴어 수업어떤 내용인지도 모른채 저자가 우리나라 최초의 바티칸 대법원 로타 로마나 변호사이자 카톡릭 사제였다는 내용만 알았는데, 책의 서문에 그가 2010-16년 서강대학교에서 강의한 초급/중급 라인터 수업을 정리한 거라고 적혀있었다.언어에 관심이 많아 일어, 스페인어, 중국어를 조금씩 공부하기는 했지만 라틴어를 배우고 싶은 마음은 딱히 없어서 반신반의하며 읽기 시작했는데, 왠걸 예상과 달리 책에 완전히 빠져들게 되었다.솔직히 얘기하면 저자에게 빠졌버렸다.  책을 읽고 있지만 저자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재현되면서 저자와 내가 둘이 앉아서 얘기하는 느낌이었다.좋은 어른이 애정의 담아 아끼는 후배에게 전하는 말이랄까. 어른으로서의 권위나 이렇게 해야한다는 강요는 전혀 없이 후배를..
사람을 안다는 것 책을 읽고 나니 내가 누군가를 안다고 말하는 것이 조심스럽게 느껴진다.'안다'라는 의미는 굉장히 넓은 스펙트럼을 지니기 때문이다.평소에  'OOO랑 친해'란 질문을 종종 듣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즉각적으로 대답하지 못하고 친하다는 것이 어느정도를 말하는 것인지 생각한다. 매 우친하다, 친하다, 보통이다, 친하지 않다, 전혀 친하지 않다..이런 기준으로 하면 어느 단계일까?'매우 친하다' 는 어느정도를 의미하는건지에 대한 보편적인 기준이 있나? 이런 생각을 하다가 음. 편하게 얘기하고 가끔 같이 밥이나 커피 마시는 사이..라고 대답한다.그래서 나는 '안다'의 의미를 그 사람이 누구인지 (이름, 얼굴, 조금 더한다면 알게된 계기)  정도로 삼는다.매우 잘안다고 하면 그 사람의 가족 등 주변인, 직업, 취향..
기술이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어디까지일까 ; 영화 원더랜드를 보고 갑자기 약속이 취소된 주말, 메모해 놓았던 호암미술관 또는 데이비드 호크니전이 열리는 라이트룸에 갈까 고민하다가 그냥 가까운 곳에서 영화를 보기로 했다.가까운 영화관의 상영시간표를 보니 '원더랜드'가 30분 후에 시작이라 일단 예매를 했다.어떤 내용인지는 모르지만 탕웨이, 수지, 박보검이 나오는 걸로 알고 있어서 뭐 영화가 재미없어도 배우들이라도 볼 수 있다고 생각해서   영화 속 설정은 단순하다. 누군가 죽거나 사망에 준하는 상태에 이를 때 '원더랜드'라는 가상의 공간으로 이동하여 살아갈 수 있다.다만 그는 가상의 공간에 있기에 살아있는 사람들을 만날 수도 접촉할 수도 없고 단지 영상통화로만 연결될 수 있다.뭐 이런 설정은 AI기술이 대두되는 요즘에는 그리 비현실적으로 느껴지지 않고 무려 10년도 전인..
불변의 법칙 ; 알고 있지만 잊기 쉬운, 실천하기 어려운 것들 이번달 독서모임 책을 투표하면서 책소개에서 '돈의 심리학'이라는 베스트셀러 저자의 최신작이란 것에 끌렸지만 막상 유튜브에서 소개한 책소개를 보니 기존의 자기계발서랑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해서 기대감이 낮아진채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어린이날과 대채휴무일 내내 비가 온 관계로 책을 읽을 시간이 많아진 덕에 이틀만에 다 읽을 수 있었다.챕터별 소주제로 이뤄진 짧은 글도 속도를 내는데 한몫했다.사실 대부분의 내용들은 기존의 책이나 경험을 통해서 또는 여러 종류의 글이나 강연을 통해서 어느정도 들어왔던 것들이었다.물론 망각의 동물인 인간답게 지속되지 못했지만.그런데 몇몇 챕터는 현재 나의 고민과 연계되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어서 지금 이 책을 읽게 되어서, 잊고 있던 부분을 다시 리마인드 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
멀게만 느꼈던 AGI 시대, 축복일까 재앙일까 ; The Coming Wave 22년말 오픈AI의 챗GPT 소개 후 AI전문가가 아닌 일반인들은 AI가 얼마나 빠르게 똑똑해지고 있는지, 인간을 대체하고 있는지를 지켜보고만 있다. 인공지능에 대한 우리의 이해속도는 인공지능의 발전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이를 어떻게 활용해야할지 우왕좌왕하면서 AI 도래로 인한 장점과 위협을 떠들어대는 각종 콘텐츠에 압도당하고 있을 뿐이다. 나조차도 chatGPT3.0, 코파일럿을 업무에 사용하고 있지만 지극히 단순한 수준이고 그 외에는 미드저니 같은 이미지 생성 AI를 그저 재미로 몇번 이용했을 뿐이다. 막연하게나마 이런 업무에 접목하면 좋겠다라는 아이디어는 있지만 그걸 어떻게 해야하는지, 누구와 상의해야하는지도 잘 모르겠다. 한편으로는 나날이 똑똑해지는 AI를 보면서 나의 일은 어떻게 변해갈지, 더 ..
이토록 솔직하면서도 우아한 글을 발견하다니 ; 여름의 빌라 (백수린 저) 오랜만에 접한 문학서적. 독서모임을 2개 하지만 대부분 경제, 사회, 기술, 자기계발 또는 고전을 주로 읽기에 소위 요즘 소설이나 에세이는 접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 그런데 지난달에는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과의 경비원입니다'라는 에세이를, 이번달에는 백수린 작가의 '여름의 빌라'라는 단편 소설집이 채택되어 오랜만에 소설과 에세이를 읽으니 마음이 조금 말랑말랑해지는 느낌이다. 특히, 보통은 10,20분씩 짬을 내어 읽다가 이번에는 2시간 정도씩 몰입해 읽다보니 몰입도 잘되고 좋았다. 여름의 빌라는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경험들 - 사람간의 관계 - 에 대해 다룬다. 대상은 가족처럼 매우 가까운 사람부터 전혀 모르는 낯선 이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마치 나의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은 공감할 수 있는 스토리와 ..
슬픔을 마주하는 방법 ;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이달의 독서모임 책은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이 책이 종종 눈에 띄던 차에 마침 독서모임에서도 선정이 되어서 읽게 되었다. 에세이로 저자는 뉴요커에서 일하던 중 형의 죽음을 겪으며 오롯이 자신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직업을 찾아 메트 미술관 경비원에 지원하고 그곳에서 일하게 된다. 10년간 일하면서 메트의 많은 작품들을 관찰하고 그 속의 담긴 의미를 이해하면서 삶에 대해 생각하는 한편, 경비원으로 일하는 다양한 배경을 가진 동료들과의 관계 속에서도 삶에 대한 태도를 갖게 된다. 그러면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가지면서 겪게 되는 생활의 변화를 몸소 체험하면서 어떤 일일 닥치든 계속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삶을 받아들이게 된다. 담담하게 쓰여진 이 책은 정신없이 흘러가는 하루하루에 매몰되..